‘한국농업에 영향을 미친 100인’에 선정되기도

백유복 씨와 그의 아내 김경자 씨 지영호 회장

평생을 벼농사에 빠져 부지런히 살아온 세월

신장동에 거주하는 백유복(65) 씨의 일생은 오직 벼농사로 일관되어 있다. 가난한 환경을 박차고 살기 위해 택한 농사로 성공과 풍요의 삶을 일군 그의 삶을 더듬어보았다.
2004년 ‘한국농업에 미친 100인’에 선정되기도 한 백 씨는 전국의 농가에서 뽑힌 10명 중 한 사람으로 새농민수도분과 회장직을 역임했으며, 전국최초로 벼 직파재배에 성공한 경력을 갖고 있다.

벼 직파재배 성공으로 농협의 초빙으로 전국을 돌며 직파교육에 앞장서기도 하였고 평택에 처음으로 기능성 쌀인 흑미를 심어 보급했다. 기능성 쌀의 재배과정을 성장기부터 수확기까지의 관찰을 기록하여 사진이 실린 책자를 만들어 널리 보급한 열정적인 농사꾼도 어렵던 시절은 있었다고 담담히 회고한다.

유복자로 태어나 홀어머니와 사글세를 살던 시절도 있었다고 하며, 부지런히만 하면 다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젊어서 한창 일할 때는 해가 짧아서 다 못했다고 한다. 곁에 있던 부인 김경자 씨도 일은 더 하고 싶은데 정말 해가 짧아서 다 못했다고 하니 부부가 얼마나 열심히 일만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늘 곁에서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부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백유복 씨는 쌀에 관한 한 지식과 상식보다는 무한한 애정부터 앞세운다. 쌀 한 톨의 소중함과 그 한 톨에 깃든 농부의 피땀을 떠올리며 ‘쌀값, 이래도 비싼가?’라는 주제로 경험의 농사교육을 한 바 있다. 한때는 쌀밥 10그릇이 커피 한 잔 값과 맞먹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며 쌀에 대한 가치와 사랑을 나타내었다.

“농사를 잘 지으니까 여기저기서 강의요청이 들어왔어요. 전국을 돌며 실지로 경험한 것들을 가르치며 시범사업도 하다 보니 농업발전에 이바지도 되었고 재미있고 보람 있는 한 시절이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부지런히 살아서 그런지 자식들도 부지런히 살고 있어요. 특별한 가훈 없이 부지런히 사는 것이 산교육이 된 것 같습니다. 부모한테 의지하지 않고 다 자립했어요”

자식들의 자립심을 대견스럽게 생각한다는 말과 현재의 농사꾼들을 거론하며 “지금의 농사는 옛날과는 달라요. 하나라도 더 개발하고 연구해서 앞장서야 합니다. 이제는 농사도 과학이에요. 두뇌를 써서 개발해야 성공하는 시대입니다. 남 따라 하면 이미 늦어요. 남들보다 내가 먼저 나서고 이루어야 해요”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벼농사의 대가 백유복 씨 부부는 농업협동조합의 새농민상 본상을 비롯해 평택시장상, 도지사상, 국회의원상, 조합장상, 농어민대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농민 후세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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