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 <본지 논설주간>

▲ 논설주간

담합(談合), 말[談]을 합친다[合]는 얘기다. 좀 비틀자면 ‘입을 맞추는 것’이다. 남녀 사이의 입맞춤, 키스는 대개는 아름답다. 그러나 담합의 입맞춤은 구린내가 물씬하다. 흔히 ‘담합행위’(談合行爲)라는 그늘 짙은 말을 쓰는 까닭이다.

돈 관련 단어, 경제용어로 쓰이는 이 말은 사업자들이 서로 짜서 경쟁을 피하는 부당한 행위다. 경쟁을 피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왜 이 ‘행위’가 부당한가?

‘장사 밑지고 판다’는 말, ‘시집 안 간다’는 과년한 처녀의 앙탈처럼 빤한 거짓말이라고 했다. 요즘은 미끼상품이라는 화려한 상술로 물건을 원가 보다 싸게 팔기도 하고 결혼 적령(適齡)이 상승하고 ‘화려한 싱글’이란 말도 파다하니, ‘빤한 거짓말’ 규정도 신화(神話)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려나. 과년(瓜年)은, 노처녀가 아닌, 시집가기 좋은 여성의 나이다.

장사는 밑지고 팔지 않는다. 다만 그런 척 하는 것이다. 경쟁 하더라도 제 실속 챙긴다. 아무리 싸게 판다고 해도, 우리 동네 주유소처럼 1원 단위로 기름 값 경쟁을 해도, 내용은 빤하다. 그래도 경쟁을 해야 한 푼이라도 고객은 싸게 산다.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소비자 대중을 위해 무지무지하게 중요하다. 얼마나? 하늘만큼 땅만큼!

‘그 삼성’과 ‘그 엘지’가 담합을 해서 고객들의 뒤통수를 갈겨왔단다. 가슴 답답하다. ‘가격 더 내리지 말자’ ‘비싼 것 팔게, 통돌이 아닌 싼 세탁기 단종(斷種)하자’ 따위를 사바사바하여 무지 많이 챙겨 먹었단다. 시민들 그 때문에 더 낸 돈이 얼마나 될꼬? 저 우라질 분들 행실 좀 보게나. ‘그 삼성’ ‘그 엘지’ 맞아?

꼼수도 특급이지, 벌금도, 안내거나 쬐끔만 낸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정말 문제네. 그런데 필자는 그 것 말고도 또 심통 부릴 일이 있소이다.

그 뉴스 시간, 서울역 대합실 큰 TV 앞 젊은 남녀의 대화, “삼성하고 엘지가 단합을 했다네, 오빠 단합이 나쁜 거야?” “글쎄, 단합이 뭐가 나쁘지?”

‘담합’이란 단어가 귀 설은 이들에게 뉴스의 ‘담합’이 ‘단합’으로 들렸던 게다. 단어의 속뜻 없이 말을 익힌 세대들의 비극일 터. 이마 이들에게 “그 거, 단합이 아니고 담합이란다.” 차분히 가르쳐 줘도 쉽게 이해 못할 수 있다. 이 커플, ‘뭉쳐 힘내자’는 행사 단합대회의 단합(團合)으로 담합을 이해하니 당연히 문제가 뭔지 알 수 없겠지?

특수한 경우일 뿐이라고? 천만에, 비슷한 이 사례도 주목하시라. 강의 실황 녹음이다.
“옥에도 티가 있네요. 선생님, 얼른 오자 고치세요. ‘적확하다’를 ‘정확하다’로요.” 또 있다. “이란 핵개발이 미국을 흥분시킬 단초를 제공했다고 쓰셨는데 ‘단초’가 아니고 ‘단추’지요?”

적확(的確)이란 단어가 많이 낯설기는 하겠지만, 틀렸다고 단언해버리는 성급한 용기를 어찌 생각해야 할까? ‘실마리’ ‘단서(端緖)’ 등의 뜻인 단초(端初)를 단추로 바꿔 듣는 ‘기발(奇拔)함’에는 새삼 놀릴 수밖에.

말과 글을 온전히, 잘 가르쳐야 할 이유가 절로 드러난다. 사례는 훨씬 더 많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르게 하라고 했다. 한자를 왕따시킨 후 우리말글이 겪는 고초도 선배들은 곰곰 생각해야 한다. 당당한 겨레 정신의 그릇인 말글의 틀이 상당 부분 어그러지고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

그 책임의 회피와 방기(放棄)가 다음 세대들의 말글 생활과 ‘생각 생활’을 어지럽게 한다. 생활 속에서, 이렇게. 그 정신의학적 (악)영향 또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사족Ⅰ, 징역(懲役)가는 범죄인 이 담합이란 말을 국립국어원은 ‘짬짜미’로 고쳐 부르자고 했다. 쓸 만한가? 큰 흠집 없으면 한자 단어 대신 이를 쓰는 게 낫겠다는 느낌 든다.
 
사족Ⅱ, ‘리니언시 프로그램’으로 삼성과 엘지가 벌금을 덜 내거나 감면 받았다고 몇몇 언론이 보도하는데, 외국어나 경제용어를 그대로 쓰는 것은 독자를 혼돈하도록 해 결과적으로 속이기 위한 ‘의도’는 아닌지? 또는 물타기? 시민을 대하는 언론과 기업의 ‘짬짜미’인가? 아니면 정부 담당자나 언론인의 외국어 실력 과시용? 하여간, 비싸게 산 시민들만 당했네.

자진 신고하면 용서한다는 것이 리니언시(leniency)다. 시민을 속인 기업에 자비를 베푸는 것이 나라의 행정이고 경제인가? 영어 아는 사람만 ‘경제(經濟)’를 하는가? 알량한 우리 시민들은 알아듣지도 말라고? 분노한 99%, 충분한 이유 있었네. 이 ‘중요한’ 뉴스, 다루지도 않은 신문과 방송 많더군. 사족(蛇足)은 ‘뱀의 다리’의 뜻, 그런데 뱀은 다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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