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상헌 칼럼- 가족·학교 신문만들기 대회 현장에서

논설주간

지난 주말 <평택시민신문>이 중요한 사업으로 벌여오고 있는 ‘가족·학교 신문 만들기 대회’의 심사를 맡느라 참가자들의 여러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해마다 하는 행사로 올해로 4회째가 됐다. 필자는 처음 이 행사에 참여했다.

의외로 재미가 있었던 점을 우선 실토해야겠다. 당초 심사위원으로서의 의무감이나 신문쟁이로서 교육에 나름 기여한다는 식의 근사한 명분은 있었지만, 솔직히 재미가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 글은 그 ‘뜻밖의 재미’를 이웃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파릇파릇, 우리의 희망인 어린 친구들이 최고의 우군(友軍)이며 후원자인 엄마 아빠와 함께 강당에 깔개를 펴고 차린 ‘가족신문사’들의 모습은 어느 놀이동산이나 체험교실에서도 볼 수 없는 열기와 아이디어로 가득했다. 또 선생님을 ‘언덕’으로 삼아 대여섯 명이 모인 또래신문도 활기찼다. 이날 그들의 주제는 평소의 게임이나 공부가 아닌 ‘세상’이었다.

과제로 주어진 ‘외계인’ ‘지진’ ‘외모지상주의’ 등 주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 이들에게는 퍽 재미난 일인 것 같았다. 가족끼리 또 친구들끼리 이런 모양으로, 평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생각을 나눌 기회가 실은 없었던 것이다. 진지하면서도 경쾌한 대화가 오고갔다.

가족끼리 한 주제에 관해 서로 토론하고 힘을 합치는 과정은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 결과를 잘 정리하는 일이다. 또 ‘기자’로서, ‘편집장’으로서 사물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공(公共)의 목적을 가진 미디어(신문)를 만드는 조직(시스템)으로 한 가족 또는 또래 친구들이 모든 힘을 다 쏟아보는 경험, 그 과정에서 넉넉하게 생겨나는 에너지와 가능성을 필자는 특별한 감흥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도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표정이었다.

대개 초중학생인 자녀들과 함께 참가한 부모나 지도 선생님들이 더 재미있어 하는 모습도 흐뭇했다. 자녀들, 제자들과 ‘동료’가 되어 세상을 해석하고 사물의 뜻을 풀어보는 일은 평소 가까운 사람들끼리 지녀온 정서의 교류와는 다른, 특별한 것이었겠다. 그들이 즐긴 ‘재미’는 바로 그 지점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보였다.    

준비해온 사진이나 그림, 디자인 재료들을 활용해 만든 알록달록 신문들은,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니고, 정말 우리 전문가들이 만든 신문보다 더 멋졌고 생동감으로 힘찼다. 우리 신문의 식구들은 이런 풍경과 참가자들의 작품에서 대단히 큰 영감을 얻었다. 평택의 신문으로서 제 역할을 했다는 보람도 맛볼 수 있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나’가 아닌 ‘기자’가 되어 주제를 사색하고 말글로 요리해 내는 것은 역지사지의 생생한 체험이다. 언론의 뜻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등 3대가 함께 살았던 과거의 대가족 같은 생활 형태에서 역지사지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현대 핵가족에서 이는 말 그대로 ‘공자님 말씀’이다. 공부 아니고는 생각할 여유가 거의 없는 요즘 어린 사람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이기주의는 역지사지의 뜻을 시험 과목 속의 ‘짜증나는 단어’로 묶어버렸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까지 착각하는 이런 세대들에게 신문 만들기를 통한 역지사지의 경험은 컴퓨터 오락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과의 대화에서 전혀 새로운 즐거움과 통찰력을 얻었다는 사실을 필자는 확인했다.

가족 간, 또래 사이에 ‘마음 통하는 일’ ‘마음 통하게 하는 일’이 어디 쉬운가. 이런 소통의 경험은 우리 어린 사람들을 미래의 지도자로 키운다. 디지털 문명이 이끄는 새로운 미디어(언론) 환경을 넉넉히 체험해 보는 일이다. 세상을 착하게 할 마련이다.

평택시 평택교육청 평택문화원의 관계자들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 날 행사를 참관했다. 후원기관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미디어교육 전문가 이동우 씨도 이날 행사에서 새롭게 발견한 가능성을 ‘심상치 않은 씨앗’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다. 평택의 기쁨, 이제 시민들이 함께 세워 주셔야 한다. 우리 어린이들이 만드는 신문 나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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