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 이철형 기자

우리는 언젠가부터 이웃 간의 작은 문제를 공권력의 힘을 빌려 해결하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옆집에서 큰 소리가 날 때, 직접 “조용히 해달라”고 하기 보다는 시청이나 경찰에 신고한다. 간단히 사과를 받거나 피해보상을 받고 끝낼 문제도 ‘관’을 끌어들인다.  

해당 공무원들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상급 행정기관에 투서를 하거나 진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일쑤다. 물론 법에 명시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촌보다 가깝다던 이웃 간의 정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시민 스스로가 경계해야 할 공권력을 사적 영역에 끌어들이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시대이던 공권력은 그 확장 속성으로 인해 국민과 충돌을 빚어 왔기 때문이다.

다음 사례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7월 초 어느 날 신문사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즉 주민들이 지름길로 이용하던 골목길이 막혀 수 백 미터를 더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면사무소 담당 공무원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들은 척 만 척해 신문사에 전화했다는 것이다.

현장에 나가 주민들을 만나봤다. 주민들이 다니던 막힌 골목길을 살펴보고 면사무소를 들러 알아보았더니 사유지였다. 원래 길이 아니었으나 수십 년 간 사람들이 지나다녔던 것이다. 담당 공무원을 만나 주민들의 민원이 이러저러 한데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더니 공무원 왈 “개인 사유지를 막은 것은 재산권 행사로 공무원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기자는 처음엔 담당공무원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개입이 아니라 양쪽의 입장을 전달해 주고 주민 간에 원만한 해결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 공무원의 자세가 아니겠냐는 생각이었다. 신문사 회의시간에 이런 생각을 내놓았더니 경험 많은 기자 선배가 “그것은 공무원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일을 공무원이 귀찮아해서가 아니라 공무원이 관여할 업무로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견해였다. 선배는 이 사안을 확장하면 ‘공권력과 개인의 자유(재산권 행사)가 충돌할 때 공권력의 행사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자본주의의 오랜 논쟁과 연결된다는 이야기였다. 이 문제는 한 동안 신문사에서 더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던 중 왜 주민들은 길을 막은 사람이 누군지, 왜 막았는지 직접 알아 볼 생각을 하지 않고 공무원이나 언론사에 도움을 청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자는 집주인을 만났다. 집주인은 면내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으로 골목길을 포함해 땅을 팔려고 내놨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민원인들) 참 이상하네. 아니 내 땅을 내 맘대로 하는데 뭐가 문제라고 공무원이나 기자에게 자꾸 말을 해”라고 한다.

주민들 중에 누가 찾아왔냐고 물었더니, 없었다고 한다.
길이 막혀 가장 불편을 겪고 있다는 다세대 주택 주민들은 “그냥 공무원에게 말하는 것이 편하고, 아무래도 관에서 하는 것이 힘이 있으니까 면사무소에 얘기 한 것이지”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왜 주민들은 먼저 이웃에 있는 땅주인을 찾아가 해결해 볼 생각을 안했을까. 공무원이나 언론사 보다 이웃사촌이 더 멀기 때문인가. 품은 좀 들었지만 배운 점도 있고 지역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 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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