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한책 하나되는 평택’ 3년차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책 하나되는 평택              공동추진 위원장

온종일 방에 들어 앉아, 혼자 실없이 웃거나 끙끙대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책만 들여다보는 날도 많았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간서치(看書痴)라고 놀렸다. 어딘가 모자라는 책만 보는 바보라는 말이다. 나는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22쪽

하늘 아래 가장 고귀한 우정은 가난할 때의 사귐이라 합니다. 벗과의 사귐은 술잔을 앞에 두고 무릎을 맞대고 앉거나 손을 잡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것, 여기에 벗과의 진정한 사귐이 있습니다.-121쪽

어쩌면 나의 처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신분의 굴레가 있는 현실 속에서 나와 같은 서자들은 변두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일생을 놓고 보면 누가 중심이고 누가 변두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는 스스로가 중심인 것이다.-159쪽

이 길로 계속 나아가면 중국뿐 아니라 더 넓고 다양한 세상도 만날 수 있으리라. 우리에게 이 길은 황제가 있는 중국의 수도를 찾아 가는 길만이 아니었다. 드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기도 했다. 세상의 전부를 보고 배우는 것이 굳이 우리가 아니라 해도 좋다. 언제일지 누구일지 모르지만, 그가 돌아와 나라와 백성을 이롭게 하는데 지금 우리가 내딛고 있는 발자국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194쪽

저 아이들과 우리 또한, 서로의 시간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노력이 저 아이들의 시대를 조금이나마 빛나게 하고, 그런 우리의 시대를 저 아이들이 기억한다면.
그보다 더 먼 훗날의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누군가 나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와 나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시간을 나눌 수 있다. 옛사람과 우리가 우리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하는 벗이 되리라.-250쪽
안소영 지음 <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중에서  


얼마 전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고 자발적 퇴교를 선언한 고려대 김예슬양은 자신을 “G(글로벌)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라고 불렀습니다. 두 번의 경제, 금융위기를 겪는 동안 가정, 사회, 국가의 규범이 무너진 상태에서, 대학은 더 말 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런 와중에 기성세대의 조언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다만 이 책과 저자 안소영씨를 소개하면서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서로의 고민을 나누어 가질까 합니다.
1979년 10월28일부터 10년간 남민전 무기수로서 복역한 안재구 교수의 셋째 따님이 저자 안소영씨입니다.
10년간 가족들과 옥중 편지를 주고 받은 것이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로 (도서출판 광야) 1989년 책으로 나왔는데, 안소영씨 편지가 유난히도 많더군요. 10여 년간 아버님과 편지를 주고받은 사연이 작가의 오늘을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가의 아버지는 말합니다. “매달려 속물적이고 미련스레 사는 너희들의 미래는 더더구나 내 머리 속에는 없다.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의 뜻대로 스스로의 책임으로 작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는 너희들의 모습만이 내마음속에 가득하다.”
따님도 말합니다. “확실히 철학은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 사색하고, 창조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두 분의 철학이 합쳐진 것이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라고 생각합니다.
서자로 태어나서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독서를 통하여 실력을 쌓고 박제가, 백동수, 유득공, 이서구 등 좋은 친구들을 만나 믿음 속에서 우정과 의리를 나누어 갖고 연암 박지원 선생을 만나 세계관을 넓혀 국가관을 확립하고 담헌 홍대용 선생을 만나 수학과 과학 등 실용적인 학문을 깨우치고 어려움 삶속에서 나이 사십이 다 되어 벼슬길에 오릅니다.
말단 관직에 있으면서도 성심을 다해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하고 오로지 백성들만을 생각하는, 자라나는, 미래세대를 생각하는 이덕무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혹독한 경쟁을 부추기는 천민자본주의 시대에, 점차 양극화 되어가는 현실에, 우리 모두 ‘서자(庶子)’가 아닐런지요.

 

‘한책 하나되는 평택’ 책읽기 사업을 시작한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3년차입니다.
독서를 통하여 토론을 하고, 토론을 통하여 민주시민의 역량을 키우자는 애초의 취지대로 많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평택의 시민의식이 성숙된 것 같습니다.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조선의 실학을 시도했고 주도했던 분들입니다. 해서 금년에는 특별히 실학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토론할까 합니다. 시민 여러분들의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모두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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