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들어 먹을 때 느껴지는 자연의 향기, 올핸 따뜻한 날씨에 곰팡이 펴 속상하기만

결혼하기 몇 년 전 어느 가을 친한 후배와 지리산을 간 적이 있다. 천왕봉까지 올라갔다 경상도 중산리 쪽으로 내려왔는데 산이 거의 끝나가는 곳에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보였다. 산에 있는 감나무이니 주인이 없을 거란 생각에 손에 닿는 감 5개 땄다.


그 즈음이 감을 깎아 널 시기였나 보다. 동네 여기저기에 수백 개의 감을 깎아 기둥에 매달아 놓았는데 마치 주홍색 감꽃이 주렁주렁 열린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잘 찍지도 못하는 사진을 열심히 찍었던 기억이 난다.


집으로 돌아 온 나도 5개의 감을 깎아 실에 매달아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었다. 5개 모두 곶감이 아주 잘 되었다. 처음 만들어 먹었던 그 곶감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전까지 사 먹었던 곶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맛있는 곶감은 아직도 먹어본 적이 없다. 한입 두입 먹을 때마다 입속에 퍼지는 달콤한 향과 촉촉한 맛은 야생의 맛, 자연의 맛 그 자체였다.


그리곤 그 후로 한동안 곶감을 만들 기회가 없었다. 서울에서 곶감을 만들 수 있는 땡감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혼하여 시골에 있는 시댁에 가 감나무를 보았을 때 얼마나 반갑던지….
그 이후로 매년 가을마다 시골에서 감을 따와 곶감을 만든다.


작대기를 이용해 감 따는 일을 처음 해 보았는데 보기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끝에 양파 망이 달려있는 기다란 작대기를 들고 감을 따야한다. 작대기의 무게도 무게려니와 고개를 뒤로 계속 젖히고 있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감은 망 속에 들어갈 듯하면서도 잘 들어가질 않고 망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작대기를 비틀어 가지를 꺾을 때 잘못하면 감이 빠져나가기 일쑤이다. 감 두어 개 따고 나면 어깨가 시큰거리고 세상은 말 그대로 노랗게 보인다. 조금이라도 감이 달려있는 가지에 가까이 가기위해 나중에는 지붕에도 올라가고 트럭도 동원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렇게 딴 감 100-200개 정도를 일일이 깎아 실에 달아 빨래 대에 매달아 놓으면 꼭 일 년 농사 지어 곡식을 창고에 싸 놓은 사람마냥 부자가 된 느낌이다. 곶감은 보통 2주 정도 되면 먹을 수 있다. 잘 말라 흰 가루가 생긴 것 보다 겉은 마르고 속은 홍시 형태인 반 건시가 더 맛있다. 곶감이 되는 속도가 감마다 달라 익어가는 순서에 따라 하나 둘씩 따먹다 보면 곶감은 금세 없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10월 말쯤 남편이 감 250개를 따왔다. 감 씨알이 예년에 비해 훨씬 굵다. 날이 좋아 그런가 보다. 100개는 친구에게 보내고 150개를 온 가족이 둘러앉아 3시간 만에 뚝딱 매달았다. 올해도 맛있게 푸짐히 먹겠다는 생각에 뿌듯했는데 그런데 이게 웬 일!
일주일 후 곶감이 잘 되어가나 하고 베란다에 나가 보니 감에 온통 곰팡이가 허옇게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낭패가…. 힘들게 따 온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노력도 아깝고 감도 아깝다. 정성을 기울이지 않고 너무 방심했나? 감 보낸 친구에게 전화하니 친구 감도 곰팡이가 피었단다. 11월답지 않게 비도 몇 차례 오고 날씨가 따듯하더니 이런 변고가 생긴 것이다. 어쩌겠는가? 실에 매달린 감을 과감히 잘라내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 속상한 마음을 애꿎은 남편에게 풀고….


며칠 전 제사지내러 간 남편이 60여개의 감을 다시 따왔다. 나무에 달려있는 감은 아직 많지만 대부분 감이 물러져 많이 따 올 수가 없었단다. 따온 감 일부도 너무 물러 깎을 수 없어 그냥 홍시로 먹으려 남겨 놓았다. 다행히 50여 개의 감은 날씨가 추워진 탓에 잘 말려지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내가 만드는 곶감에 까지 영향을 미칠 줄 몰랐다. 때가 맞지 않아 앞으론 곶감 만들기도 힘들어지겠다 생각하니 착잡한 심정이다. 아파트에서 만들어 먹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곶감. 감사한 마음으로 소중하게 아껴가며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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