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로의 시와 시조세상 68

▲ 권희로<시인, 시조시인>

지명이나 어떤 명칭은
그 무엇을 연상케 하는 뜻 깊은 의미가 있다.
천이백년을 지켜온 그 이름 진위(振威)
위엄을 떨친다는 뜻이다.

백제 때는
연달부곡(練達部谷)이라 했으니 통달하여 다스리는 곳이요
송촌활달(松村活達)이라 했으니 솔숲이 무성한 곳이요
금산(金山)이라 했으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이요

고구려 때는
금산(金山)을 부산(釜山) 솟뫼라 했으니
큰 가마솥에서 먹거리가 만들어지듯 풍성한 곳이요

신라 경덕왕 때는
진위(振威)라 했으니 지명의 변천사를 보아도
위엄을 떨칠만한 지역이라 일컬은 이름일레라

근대에 이르러
군청 경찰서가 진위에 있어 읍내면으로 이름하다
관청이 평택으로 옮긴 후 북쪽에 있다하여
북면이라고 하였고
해방 후 옛 이름을 기억하여
진위면이라 하였네라

* 진위(振威)는 평택시의 옛 지명이다. 고려시대 이전만 해도 진위(振威)는 진위면, 서탄면, 송탄지역 일부만을 의미하였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일정한 행정구역이 형성되지 않았고 백제가 지배할 때는 송촌활달, 연달부곡, 금산 등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5세기 장수왕의 남하로 고구려의 지배를 받으면서 부산현(釜山縣)으로 바뀌었다. 진위(振威)라는 지명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나타났다. 그 뒤 고려시대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고 조선시대 들어와 송탄남부지역과 옛 평택시 지역, 고덕면 일부지역을 다스렸던 영신현을 통합하면서 고을의 영역이 넓어졌다. 1895년 23부제를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진위현은 진위군이 되었다. 진위군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 팽성읍에 해당하는 평택군과 서평택 5개 읍, 면을 다스렸던 수원군을 통합하여 오늘날과 같은 영역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근대이후 경부선 평택역 부근에 평택(平澤)이라는 근대도시가 성장하면서 1938년에는 행정구역이 평택군으로 바뀌어 대표지명의 지위를 상실하였다. 대표적 지위를 상실한 옛 고을의 읍치(邑治)는 1914년에는 북면으로 불러지다가 해방 후 진위면으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른다.(지명해설: 김해규 평택한광중학교 교사, 향토사학자)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