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 한 책 읽기 릴레이기고-55

▲ 인정의<청북중학교 교장>

오늘 아침 출근길은 가을에 내리는 실비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평택에서 청북중학교까지 출퇴근을 하면서 바라보는 평택평야의 들판은 사계절의 변화를 실감나게 알려 주는데, 오늘 아침 궁안교 다리를 지나면서 문득 어느 가정집에 핀 황금색에 가까운 노란색 장미가 눈에 띄었다. 아무도 없는 승용차 안에서 그 꽃을 보고 내가 웃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 그 웃음을 참지 않기로 했다. 사춘기 소녀처럼.

그래, 사춘기. 나는 참 많은 책을 읽었지.
앉아서도 읽고, 누워서도 읽고, 눈이 나빠져서 책을 읽을 수 없을 때까지 읽다가 아버지에게 안경을 사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내 아버지는 “여자가 무슨 안경이냐?”며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셨고, 책을 읽다가 아버지나 엄마에게 책을 빼앗기기도 여러 번 했었다. 아마 그 때가 중학교 2학년과 3학년 사이였을 것이다. 책 읽는 것을 제지당했기에 안경도 쓰지 않았고, 눈도 나빠지지 않았기에 우리 부모님께 또 다른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래도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책을 통해서 참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이광수도 만났고, 두보도 만났고, 이백도 만났고, 헤밍웨이도 만났고, 괴테도 만났다. 동서고금의 저자들을 책을 통해서 만나면서 나는 내 친구들보다도 나의 눈빛이 맑고 강함과 자신감이 생김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둘이 생겼다. 핑계이지만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마음이 초조했고, 아이의 앞날을 생각하면 책의 내용이 가슴속에 들어오지 않아서, 눈으로 글만 읽었고, 겨우 학생들 교재연구를 위한 독서만 할 뿐이었다.

아이들이 장성하고, 내게 시간이 생기면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좋은 서적을 많이 구입해서 책장에 비치해 놓았다. 말년의 여유를 독서를 하면서 지내려고.
이제 우리 아이 둘은 모두 결혼했고, 내겐 다시 황금 같은 시간이 왔다. 그러나 이젠 돋보기가 없으면 책을 읽을 수가 없다. 노안이 와서 안경의 힘을 빌어야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그림의 떡(책)이 되고 말았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학창시절에 읽었던 책들에게서 그 내용과 감정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고등학교 국어 교사도 너끈히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눈도 밝고, 귀도 밝고, 기억력과 감성이 있는 젊은 시절에 읽었던 책은 평생을 간다. 그러나 내 주변이 복잡해지고 혼탁한 생활 속에서 읽은 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경험으로 보아 학생들은 총명한 학창시절에 더 많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성인이 되어서 읽는 책은 이해력에 플러스가 가해지면서 더 많은 지식과 교양을 얻을 수 있으니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고, 인생의 황혼기가 되면 지나간 날들을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니, 소일거리 삼아 책을 읽는다면 조금 더 알찬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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