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규의 문화살롱 

이정은 큐레이터
이정은 큐레이터

가수 김현식은 “노래를 잘 불러야 가수가 아니라, 노래로 자기 생각과 삶을 이야기할 줄 알아야 가수”라고 말했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철학과 삶을 예술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한 사람의 아티스트가 공연이나 전시를 하려면 멍석을 깔아주는 사람, 바람 잡는 사람, 심부름하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공연이나 전시에서 기획하고 멍석을 깔아주는 사람을 디렉터 또는 큐레이터라고 한다. 이정은은 재개발을 앞둔 집창촌 ‘평택 삼리’의 기억을 예술적으로 큐레이팅하는 사람이다.

늦깎이 큐레이터, 공공미술에 관심
역사쟁이들은 사람을 만나면 출신부터 묻는 습관이 있다. 이정은은 평택 토박이다. 어디에서 살았냐는 질문에 ‘주공1단지’라고 말했다. 지금은 고층아파트단지로 변모한 비전1동 ‘롯데캐슬 아파트’의 전신이 주공1단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등학교 때의 꿈은 ‘화가’였다. 그렇다고 부모님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용기 있게 말하지도, 떼를 쓰지도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수능점수에 맞춰 적당히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다니는데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절박한 마음에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 편입했다. 홍익대 예술학과에서는 미학, 미술사, 미술비평, 전시기획을 공부했다. 이공계 출신으로 생전 공부해 보지 않았던 미학이나 미술사, 미술비평을 공부하려니 무척 힘들었다. 그를 버티게 한 것은 ‘즐거움’이었다. 미술은 힘들지만 재미있었다. 대학에서는 공부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못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사실 석사과정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무엇을 할지 잘 몰랐다. 미술 공부가 좋아서 열심히 공부했을 뿐이다. 석사학위 논문으로 ‘소정 변관식’의 그림 세계를 분석하고 비평했지만 그렇다고 미술사가나 예술비평가로 나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박사과정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공미술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공공미술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88올림픽이 계기가 되었다. 미술가들은 외부 세계와 차단된 미술관에서 일부 계층만이 작품을 향유하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대중에게 공개된 공공장소에서 작품을 전시하여 다양한 대중들이 감상하고 상호소통을 꾀하려고 하였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그려진 걸개그림이나 벽화, 공원에 전시된 동상이나 조각도 공공미술이고 아파트를 조경할 때 설치하는 조각도 공공미술이다. 노무현 정부의 ‘아트 인 시티’는 정부가 주최한 최초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였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 때 ‘마을 미술 프로젝트’로 계승되었다. 이정은도 2009년 이 사업에 큐레이터와 사무팀장으로 참여했다. 비록 6개월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이때의 경험은 향후 공공미술 큐레이터로 방향을 설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공공미술은 ‘장소’가 중요하다. 장소에 대한 해석은 작품에 영향을 준다. 공공건물이나 공원에 설치된 미술품과 미군기지확장반대운동을 전개했던 팽성읍 대추리의 벽화가 성격을 달리하는 것은 장소가 갖는 특징과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평택 삼리’도 마찬가지다. 성매매집결지인  ‘삼리’라는 장소에 대한 작가의 해석에 따라 작품은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다양한 프로젝트로 내공 쌓아
2009년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한동안 공부에 집중하던 이정은은 2013년 안정리 프로젝트에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평택은 어려서부터 성장한 고향이지만 기지촌 안정리는 도시 안의 섬처럼 참 낯설었다. 침체한 기지촌 거리와 경제를 문화와 예술로 재생한다는 취지에는 동감했지만, 기지촌의 역사와 정서를 이해하지 않고는 공공미술로 주민들과 소통하며 기지촌에 활력을 불어넣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디렉터가 지향하는 일회성 공연이나 전시, 축제 중심의 예술 활동이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식인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결국 첫해만 활동하고 안정리 프로젝트를 떠났다. 
이정은은 ‘2017년 인천 아트 플랫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곳에서 예술가들과 함께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영감을 작품으로 제작하여 전시하는 ‘달빛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열린 공간에서 만난 예술가들과 문화와 예술로 생각을 나누고 공유했던 경험은 특별했다. 
2019년에는 인천시 부평구에서 주최하는 ‘부평 영크리에이티브 2기 공모사업’에 당선되었다. 당선된 주제는 ‘도심공원’이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이정은은 도심공원을 인간이 여가생활을 위해 만든 인위적 생태 공간이고 유사 자연이며 도시인들의 반복적 여가 공간이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자생적일 수 없으며 인간의 과도한 개입과 욕심에 의해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의 치열한 생존 투쟁이 전개되는 장소로 보았다. 이정은은 4명의 예술가와 작업했다. 작품은 약 1개월 동안 일반에게 공개했다. 인간의 삶이나 일상과 밀착된 주제로 전시기획을 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예술비평이나 여타의 작업보다도 전시기획이 본인의 적성에 가장 잘 맞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프로젝트였다. 

 

삼리골목 풍경
삼리골목 풍경

 

다시 고향으로 ‘삼리’와 연결
현대인은 나그네다. 비록 토박이라고는 하지만 이정은이 평택에서 살았던 기간은 20년이 조금 넘는다. 고향을 떠난 뒤로는 부평초처럼 떠다니었다. 이정은에게 평택은 특별하지 않다. 어쩌면 익숙한 곳, 부모님이 계신 곳, 어릴 적 기억을 공유한 친구들이 있는 곳일 뿐이다. 나이를 먹었다고 연어와 같은 회귀본능이 발동되지도 않았다.
2013년 안정리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2년쯤 평택에 거주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떠났다가 40살이 다되어 다시 찾은 평택은 참 묘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평택과 다시 인연을 맺었다. 포승읍에 소재한 사립미술관 mM아트센터에서 학예실장으로 일해달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1년쯤 일했다. 그러다가 평택동 ‘삼리’ 재개발을 담당하는 BT그룹 강대표와 연결되었다. 
강대표와의 인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평택역 광장에서 공공미술프로젝트 ‘로맨스가 필요해’를 기획 전시했는데 실내공간이 필요했다. 실내공간을 찾다가 ‘삼리’ 입구에 작은 건물을 소유한 강대표를 알게 되었다. 당시 강대표는 흔쾌히 공간을 내줬고 덕분에 실내전시를 멋지게 마칠 수 있었다. 
mM아트센터에 근무하며 기획전시에 대한 갈증이 일었다. 미술관 큐레이터도 재밌지만 자신의 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만날 때 힘차게 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대표가 생각나 연락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삼리’ 공간 재개발을 추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삼리 ‘그린라이트’ 프로젝트는 강대표가 제안했다. 평택 토박이로 사업가로 성장한 강대표는 본래 건축학도였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면서 ‘평택 삼리 구성원들을 위한 문화복지공간’을 설계하기도 했다. 그만큼 ‘삼리’에 대한 이해가 높고 공간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이번 재개발 과정에서도 개발 이전에 개발지역의 기억(記憶)을 인문학적 또는 문화·예술적으로 보전하고 싶은 욕망을 내비쳤다. 심지어 개발과정에서 사용하는 마케팅 비용을 문화와 예술에 투자하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제시하기도 했다. 
 

교차공간 818과 공간삼리

 

삼리를 해석한 ‘그린라이트’
‘삼리’ 입구 서울면옥 2층에는 남서울여관이 있었다. 서울면옥은 역사가 오래된 냉면 맛집이다. BT그룹은 자신들이 매입한 남서울여관 건물을 무상으로 임대해줬다. 그렇게 해서 전시공간 ‘교차공간 818’이 만들어졌다. 전시공간 리모델링과 전시기획은 평택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집창촌 입구 두 개의 성매매용 건물을 빌려 ‘공간 삼리’라는 전시공간도 만들었다. 지난 2023년 12월 1일부터 올해 1월 14일까지 ‘교차공간 818’과 ‘공간 삼리’라는 두 곳의 전시공간에서 ‘그린라이트’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에는 이정은이 큐레이터를 맡고 박영희·안민욱·황혜인 등 7명의 작가가 참여해 각자의 시각과 방법으로 ‘삼리’를 해석했다. 
이정은은 전시회의 목적과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 구역은 쌈리라 불리는 평택의 성매매 집결지입니다. 성매매를 위한 기능적 장소로 유지되어 온 탓에 이곳은 존재하되 보이지 않고 열려 있으면서도 닫혀 있는 공간으로 존재해왔습니다. 이제 이곳으로 들어가도 된다는 시그널, 이곳만의 삶의 기억과 감각을 들여다보겠다는 녹색의 시그널을 보내고자 합니다.” 
그에게도 삼리는 닫힌 공간이었다. 분명 평택에 존재하지만 존재를 애써 부정당했던 공간이 삼리였다. 그것은 삼리의 구성원도 마찬가지였다. 한때는 평택경제의 중요한 기둥 역할을 했지만 포주가 되었든 성매매 여성이 되었든 평택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심지어 성(性)을 파는 포주나 여성은 정죄 받았지만 정작 성(性)을 산 남성은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모순이 ‘삼리’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이정은은 이 같은 모순적 공간을 예술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그렇다고 종교적 시각이나 인권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지는 않았다. 값싼 동정심도 금물이다. 전시 중에는 성매매 여성들의 방을 날것 그대로 공개하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사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되었던 부분이 집과 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성매매 여성들의 방은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을 충족하는 공간이겠지만 거주했던 사람에게는 사생활의 공간이고 삶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전시 중인 교차공간 818
전시 중인 교차공간 818

 

미래? 닥치는 대로 산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올해의 계획을 물었다. 이정은은 “계획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닥치는 대로”라고 말하며 웃었다. 예술가는 한 해 두 해의 계획보다 철학과 방향성을 갖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점심를 나누기 위해 서울면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도시재생사업에서 문화와 예술의 역할로 이어졌다. 이정은은 많은 지자체에서 문화와 예술로 구도심을 리모델링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구도심을 리모델링하고 상권을 살리는 데 예술이 일조했지만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올라 예술가들은 쫓겨나고 영세한 상인들은 가게를 접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닥치는 대로 산다”고 호언장담했어도 사실 큐레이터 이정은에게는 소망이 있다. 소망은 이뤄지면 좋지만 이뤄지지 않아도 상관없는 꿈이다. 올해는 재개발을 목전에 둔 ‘삼리’와 관련된 기획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싶다. 삼리의 기억을 기록으로도 남기고 싶다. 그것이 작은 꿈이고 소망이다. 
 

본지는 1월 24일부터 매월 넷째 주에 ‘김해규의 문화살롱’을 싣습니다.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 소장이 다양한 문화예술인을 인터뷰해 독자들의 평택 문화를 향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공감대를 이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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