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극동 최대 미해군기지가 있는 요코스카는 지금…

 

동북아 정세로 시각을 넓혀

미군기지 문제 접근해야

군항투어를 통해 요코스카 기지에 기항한 미해군 함정을 볼 수 있다.
군항투어를 통해 요코스카 기지에 기항한 미해군 함정을 볼 수 있다.

2022년 11월 15일 한미연합군사령부의 평택이전이 완료되면서 본격적인 ‘주한미군 평택시대’가 시작됐다. 한미연합사가 있는 험프리스 기지는 1467만㎡(444만평) 규모로 미2사단과 미8군사령부, 한미연합사 장병과 군무원, 가족 등 8만여 명이 거주하는 미군의 해외기지 중 세계 최대 규모다. 미군기지 주둔으로 평택에서는 크고 작은 미군 관련 사건사고가 발생해왔다. 하지만 미군기지로 발생한 문제는 국가 간 조약에 따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법률적 권한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에 평택시가 시민의 삶과 안전을 책임지고 지켜내려면 지방자치와 주민참여를 어떤 방향으로 확립해 나가야 할지 모색하고자 기획취재를 하고 6회에 걸쳐 게재한다. 두 번째로 극동 최대 규모의 미해군기지가 있는 일본 요코스카에서 도시와 시민의 변화를 살펴보고 평택시와 평택시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보았다.

요코스카에는 일본 자위대 해군기지도 있다. 함정에 걸려 있는 욱일승천기가 눈에 띈다.
요코스카에는 일본 자위대 해군기지도 있다. 함정에 걸려 있는 욱일승천기가 눈에 띈다.

요코스카시는 일본의 수도인 도쿄 남쪽에 위치한 위성도시다. 도시 동남부가 태평양에 접해 있어 도쿄만의 입구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일본 제국시대에는 일본 최대 해군 기지가 위치한 군사 거점이었다. 제2차 대전 이후 미군은 요코스카의 군사시설을 접수해 자신들의 해군기지로 삼았다. 현재 요코스카 기지는 미해군7함대의 근거지이자 극동 최대의 해군기지이며 미국 본토 이외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항공모함 도널드 레이건호가 상주하는 모항이다. 기지에 근무하는 미군 관계자와 가족은 약 2만5000명으로 이들을 위한 숙소, 학교, 병원, 상점, 체육관 등이 배치돼 있다. 기지 면적은 약 336만㎡로 시 전체 면적 100.81㎢의 약 3.3%를 차지한다. 여기에 자위대 기지 약 304만㎡를 더하면 군사시설이 요코스카시 전체 면적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미해군·일자위대 기지 면적

640만㎡…시 전체 6.3% 차지

2008년 핵항공모함 기항으로

기지반대운동 격렬하게 전개돼

도심과 미군기지 거리 2km에 불과

요코스카는 미해군기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다. 도심과 미군기지와의 거리는 2km에 불과하다. 시내 중심지인 미카사 상점가에서 해변 방향으로 10분가량 걸어가면 대형 쇼핑몰과 카페를 오가는 시민과 도시 앞바다를 오가는 미군 함정들이 보인다. 이런 도시 구조는 구군항시전환법(旧軍港市転換法, 군전법)에 따라 요코스카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군전법은 2차 대전 이후 1949년 군항이 있던 요코스카·사세보·우레·마이즈루 4개 시를 평화 산업 항만 도시로 전환하겠다는 취지로 제정된 특별법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요코스카에서는 1950년 6월 치러진 주민투표에서 90.8%의 찬성을 얻어 시행됐다. 군부지나 군사시설을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양도받아 상가와 상업빌딩이 건설됐고 공원·학교가 들어섰다. 1985년에는 ‘요코스카시 중심 시가지 정비 계획’을 수립해 현재의 중심시가지가 개발됐다. 일본 자위대가 먹었다는 ‘군함 카레’와 미군에 요리법을 전수받았다는 네이비(Navy) 햄버거가 요코스카의 명물이 됐으며 유람선을 타고 미해군기지와 일본자위대기지를 둘러보는 군항투어가 대표적 관광상품으로 떠오른다.

 

원자력 항모 모항화를 거부하는 주민투표운동 모임 등에서 활동한 고토 마사히코 변호사
원자력 항모 모항화를 거부하는 주민투표운동 모임 등에서 활동한 고토 마사히코 변호사

 

핵 항공모함 기항 이후

2008년 9월 25일 핵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요코스카 기지에 기항하면서 요코스카의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이 생겨난다. 조지워싱턴호는 원자로(열 출력 60만㎾) 2기를 탑재한 원자력 관련 시설이지만 안전 심사도 받지 않고 입항했다. 이는 일본의 평화헌법 9조의 ‘핵무기는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위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코스카 기지는 일본법에 구속되지 않는 ‘치외법권’이다. 원자력 항모 모항화를 거부하는 주민투표운동 모임 등에서 활동한 고토 마사히코 변호사는 “1952년 일본과 미국이 체결한 ‘일미행정협정’은 ‘일본에서 미군과 그 관계자가 저지른 모든 범죄에 대해 미국 군사법원과 당국이 전속 관할권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반세기에 걸쳐 ‘전쟁포기’를 헌법으로 표방하면서 일관되게 군비확장을 추진하고 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해온 일본의 모습이 요코스카 기지에 축약돼 있다”고 말했다.

이후 핵탄두를 탑재한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최첨단 이지스함, 탄도미사일을 추적할 수 있는 레이더 등이 속속 배치된다.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주민 삶을 위협하는 핵무장에 시민·사회단체는 격렬하게 반발했고 시내 곳곳에서 반대 집회가 이어졌다. ‘비핵 시민 선언운동 요코스카’의 니이쿠라 히로시씨는 “주민들은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면 어쩌나, 핵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며 “주일미군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던 주민들이 ‘핵항공모함 배치만은 안 된다’면서 기지 반대운동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요코스카 시민단체 ‘비핵 시민 선언 운동 요코스카’의 니이쿠라 히로시씨
요코스카 시민단체 ‘비핵 시민 선언 운동 요코스카’의 니이쿠라 히로시씨

 

‘기지도시’라는 부정적 이미지

PFAS 등 미군관련 문제 늘어

신규유입 줄며 인구 계속 감소

행정은 국제교류 주력으로 변화

시민 대다수 “기지도시…바람직하지 않아”

2006년과 2008년 주민들이 지방자치법에 근거해 항모 입항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 운동을 진행해 당시 4만~5만명의 주민서명(전체 인구 41만명)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보수정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시의회는 번번이 부결했다. 주민들의 불안감은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한층 높아지게 된다.

새로운 미군기지 관련 문제도 불거졌다. 코로나 확산 시기에 미군기지 내 감염자·확진자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2022년 10월에는 요코스카 기지 하수처리시설에서 기준치의 수백 배가 넘는 과불화화합물(PFAS)이 검출돼 요코스카시가 미군기지에 하수 배출 중단을 요청했지만 미군이 거부했다. 마사히코 변호사는 “요코스카 행정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며 “지자체가 지방주권을 행사해도 중앙정부의 압박, 미일조약에 따른 권유 등에 의해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는 존재하지만 주민 의견을 계속 확인하고 주민 편에서 그 뜻을 반영하려는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영향일까. 수도권 위성도시인 요코스카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1992년 43만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매년 줄어들어 2023년 7월 1일 현재 인구는 37만6847명이다. 고바야시 노부유키 요코스카시 시의원은 “최근 요코스카의 인구 감소율은 가나가와현에서 최고 수준”이라며 “신규 인구 유입이 줄면서 지가와 주택 가격은 하락하고 도시 경제가 활기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에게 정보를 제대로 제공해

스스로 도시 방향 선택하게 해야”

 

“경제·개발에 국한해 바라본다면

지방주권 제대로 행사할 수 없어”

하지만 요코스카 주민이 미군기지와의 공존을 바라는지 미군기지를 반대하는지는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아 보인다. 2017년 요코스카시가 15세 이상 시민 2000~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를 보면 도시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 90%가 넘는 응답자가 ‘기지도시’라고 응답했으며 이들 중 3.5%만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눈에 띄는 것은 미군기지가 있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2008년 44%에서 50%로 상승했다는 점이다. 히로시씨는 “요코스카 주민 상당수가 주일미군 군무원이거나 군전법에 따른 ‘기지경제’ 종사자다 보니 ‘기지가 경제와 고용을 지탱한다’는 인식은 여전히 뿌리 깊다”며 “하지만 대다수 일본인은 미군이 먹는 햄버거를 먹으러 올 수는 있어도 핵항모가 있는 도시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기지대책과가 국제교류·기지정책과로

행정에서는 미군기지와 관련해 국제교류에 주력하려는 변화가 감지된다. 카미지 카츠아키(上地克明) 시장은 2017년 자민당·공명당 추천으로 출마해 당선됐으며 취임 이후 ‘기지대책과’를 ‘국제교류·기지정책과’로 재편했다. 미군기지 문제에 대한 정보수집, 조정, 대책 마련 등 기존 업무는 계속 맡지만 제1업무는 ‘국제적 행사 및 의전 등에 관한 일’로 바뀌었다. 하라다 아키히로 전 시의원은 “국제교류·기지정책과는 구리하마 페리 축제를 개최하지만 핵항모 기항으로 우려되는 방사선 측정은 일본 정부에 맡기고 있다”며 “보수정당 출신 지자체장이어서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일본사회 보수화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바야시 노부유키 시의원
고바야시 노부유키 시의원

노부유키 시의원은 “시와 시의회에서 미군 문제를 파헤치거나 알리는 것을 억제하는 분위기가 있어 우려스럽다”며 “주민에게 기지 관련 정보를 제대로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미래 도시의 방향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라다 아키리로 전 시의원
하라다 아키리로 전 시의원

히로시씨는 “경제·개발에 국한해 기지를 바라보거나 외교·방위는 국가의 결정사항이라고 넘어가서는 지방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며 “기지문제도 시각을 넓혀 세계·동북아정세와 연관해 바라보며 내가 사는 곳을 평화의 도시로 만들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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