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출신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과 관련한 단행본이 현재 100여 권 넘게 출간돼 있다. 한국 근현대 지성사에서 안재홍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 걸쳐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줏대 있게 고민하며 국가비전을 설계하고 실천한 민세 안재홍. 그를 다룬 책들을 찾아 그 의미와 핵심대목, 독서 포인트 등을 소개해 민세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국민당 당수 안재홍
민족진영 단결위해 김구의 한독당과 통합
비상정치회의 소집과
비상국민회의 결성, 민주의원 발족
<해방일기 3>은 1946년 2월 1일부터 1946년 4월 30일까지의 가상 기록이다. 2월 1일 김구 주석이 중경 임시정부를 계승, 과도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소집한 비상정치회의가 비상국민회의로 바뀌어 결성되었다. 안재홍은 비상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으로 나라를 우선 세워 민족을 구해야한다고 생각했다. 14일에는 비상국민회의 정무위원회가 미군정의 요청으로 성격이 바뀌어 자문기관인 민주의원이 발족되었다. 2월 26일에는 일간지 한성일보가 창간되어 민세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3월 20일 역사적인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덕수궁에서 열렸다. 이틀 후인 22일 김구가 이끄는 한독당과 안재홍이 만든 국민당은 합당을 발표했다. 합당에 반대하는 국민당원들도 많았으나 민세는 미소공동위원회의 시작과 함께 민족진영의 대단결이 필요하다고 여겨 고심 끝에 통합을 단행했다.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과
좌우합작 실천
당시 반탁 세력은 해방을 항일투쟁의 결실로 이해하고 연합국이 조선인을 위해 조선을 점령한 명분을 받아들이되 더 이상의 속박을 거부하는 이상적 민족주의자와 조선 해방을 연합국 승리의 부산물로 보고 다른 연합국의 견제 없는 미국 지배 확립을 지지한 현실주의적 반민족주의자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방을 연합국 승리의 부산물로 이해하면서 통일 건국을 지향하는 현실적 민족주의자 김규식, 안재홍, 김붕준, 원세훈 등은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로 끝나자 통일건국을 목표로 험난한 좌우합작에 나섰다.
좌우합작을 놓고도 나는 상대방의 선의를 최대한 믿는 것이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나와 다른 주장을 내놓는다고 해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극단적인 비난을 삐라로 뿌려대는 사람들은 합작에 진정한 의지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해방에 연합국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처럼 건국에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조선 사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어쩌다 잘못된 제안을 내놓더라도, 근본적인 선의를 인정해줘야 잘못된 점을 바로 잡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해방일기 3, 421쪽).
18세기 계몽사상으로 근대 천부인권론의 기초를 놓은 장자크 루소는 <에밀>, <사회계약론>을 통해 당대 모순을 비판하다가 정적들의 탄압으로 오랜 망명 생활을 했다. 그러나 루소는 언젠가는 제대로 평가될 역사의 진실만을 믿고 죽는 순간까지 진리 탐구에 헌신했다. 불과 100년도 안 돼 루소의 진실이 옳다는 것은 역사에 의해 증명되었다. 해방 공간에서 민세 등이 주도한 좌우합작운동도 훗날 그 진정성이 역사에 의해 제대로 조명 받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황우갑 전문기자·민세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