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 <본지 논설주간>

▲ 논설주간

‘세상이 오늘 밤까지만 있는 듯하다.’
어떤 젊은 친구의 블로그에서 본 문장입니다. 날짜를 헤아리니 이미 군대생활 후반을 씩씩하게 보내고 있을 이 친구, 몹시 우울한 입영(入營) 전야를 보냈군요. 이해합니다.

아들 군대 보내기 전날 밤 글쓴이도 퍽 쓸쓸했더랬지요. 가족 식사모임 후 혼자 쐬주 마시고, 개천가 인적 드문 곳을 걷다가 문득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처음 고백하는 열없는 얘기지만, 눈물도 몇 방울 흘렸습니다.

“나도 보내기 싫단 말이야!”
군대에 친구도 있습니다. 집안에 연줄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해온 일 때문에 ‘알 만한 사람’ 몇몇도 압니다. 누구누구도 그리 했다고들 합니다. 심지어 왜 ‘부모된 도리’를 다 하지 않느냐는 투로 정색하고 충고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왜 보내느냐, 그것도 ‘빡빡 기는 보병’으로 보내는 이유는 뭐냐, 일 나면 어떡할래, 대개 이런 얘기였던 것 같네요. 참 당혹스러웠습니다. 딴은, 그 분들도 나를 보면서 황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요? 복잡한 속내지만, 이해합니다. 

해병대나 유디티, 스키부대 같은 곳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휴학하고 복학하는 스케줄이 잘 안 맞는다고 하더군요. 생각하건데, 그 멋진 부대에 응모할 자신이 없었거나, 응모했다가 미끄러진 것 때문이 아니었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지도 즐겁기야 했겠습니까? 그래도 씩 웃고 손 흔들며 등을 보이던 이 녀석의 까까머리 뒤통수가 참 이뻤습니다. 춘천으로 입대했는데, 좀 있다 원주로 가더군요. 아내는 ‘전방은 면하나 보다’며 다행으로 여기는 눈치였는데, 저는 타박을 좀 했지요. 그런데 웬걸요? 여지없이 전방으로 배치됐습니다. 솔직히 저도 좀 서운했지요.

면회 가기도, 휴가 오기도 쉽지 않은 곳에서 ‘빡빡 기다가’ 씩 웃으며 아들은 돌아왔습니다.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잘 지냈답니다. 요즘도 직장생활 틈틈이 군대 친구들과 만나는 것 같더군요.

가기 싫은, 보내기 싫은 마음도 이해합니다. 또 혹 군대에서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면 얼마나 심난해 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씩 웃는 것이 매력인 아들의 군대생활이 자랑스럽습니다. 또 ‘부모된 도리’에 관련한 저 자신의 선택도 자랑스럽습니다.

휴가 나온 군인들을 다 내 아들인양 느끼는 마음은 저만의 것은 아닐 터입니다. 자꾸 눈이 갑니다. 차비는 충분한지, 배는 안 고픈지. 누구라고 그러지 않은 이가 있겠습니까? 운전할 때 군 트럭 뒷좌석의 애송이 군인들을 보면 꼭 손을 흔드는 버릇은 이런 마음이지요.
“씩씩한 내 아들들아. 고맙다, 참 고맙다!”

‘천암함’ 때 많이 울고, 무척 화도 났습니다. ‘연평도’ 때는 하도 기가 막혀 차라리 저 스스로를 탓하게 되더군요. ‘나’와 수많은 다른 ‘나’들, 현재 세상을 떠맡고 있는 세대들이 제 역할을 못해 이런 처참한 상황을 맞았구나, 내 슬픔도 그렇지만 생때같던 아들을 잃은 부모들의 저 거대한 설움은 또 어찌할꼬.

서울시청 앞 분향소, 분당 국군병원 영안실에서 오래, 아주 오래 눈을 감고 생각했습니다. 겨레를 지키는 장한 용(龍)이 된 이들에게 다짐했습니다.
“내 아들들아, 잘 가거라. 이 슬픔 결코 잊지 않으마.”

최백호의 노래 ‘입영전야’는 30년 전 청춘들에게도 뜨거웠답니다. 데모하다 찍혀 고시 2차 시험을 앞두고 입대해야했던 친구의 입영전야도 ‘세상이 오늘 밤까지만 있는 듯’ 쓸쓸했지요. 건배의 제목이 젊음이었는지, 허무(虛無)였는지 기억 아득하지만 ‘잔을 들어라’를 거푸 외쳤답니다.

지난날들 돌아보며 숱한 우리 얘기/ 넓은 너의 가슴 열리고/ 마주 쥔 두 손엔 사나이 정이/ 내 나라 위해 떠나는 몸/ 뜨거운 피는 가슴에/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2절)

세월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비로소 우리는 압니다. 군대가 ‘군대 이상(以上)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 아들들에게 쥐어줄 지혜 한 토막이나마 가지게 된 것이 세월의 보람이군요. ‘이러이러하니 군대는 가야만 한다’는 당위성 말고도, 군대는 그 시간과 땀에 어울리는 ‘자랑찬 뜻’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새의 둥지처럼 편안한 엄마 아빠 품을 떠나 다른 영토에 들어서는 것이지요. ‘입영’의 속뜻입니다. 곰신 여친 새침한 눈총의 사정거리를 벗어나는 것이 더 애닮은 장정들도 있을 터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처음 밟는 낯선 대지(大地)지요. 왕성한 의욕과 정열로 내달려야 할 가슴 벅찬 신세계랍니다.

기쁨만 있을 리는 없지요. 그늘 또한 깊고 음습할 것입니다. 군대에서 좌절하고 끝내 낙오하는 젊음은 참 측은합니다. 그 원인이 제도적인 것이건, 개인의 특성이건 이런 안타까움을 메울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좌절의 원인들 또한 군대와 그 상위(上位) 존재인 나라를 위해 극복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신세계를 향한 상상력은 순수한 용기와 함께 그 깊고 음습한 골짜기를 넘어 성취의 능선과 정상을 내딛게 하는 힘입니다. 몰라서 두렵건, 두려워서 모르건 그 대상에 가까이 다가서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지요.

일면(一面) 배우고, 일면 따르고, 일면 고치세요. ‘내가 군대다’라고 외치세요. 젊음은 ‘순한 양’이 아닙니다. 당신은 거센 숨 토하는 노기(怒氣) 가득한 호랑이가 아니었던가요? 정면 돌파, 젊음의 기백에 당할 것이 무엇인가요? 이 지점, 여러분이 군대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셈하는 생각의 출발점입니다. 지형(地形)을 바꾸세요.

군대는 또 다른 큰 배움터입니다. 우리 사회 인적 자원의 특별함과 우수성의 원천으로 경영학은 군대의 경험을 자주 얘기합니다. 전우애로 얽힌 네트워크 또한 자산입니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세상을 멋지게 건너는 자세와 기술인 것입니다. 한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는 이런 관점에서 세계 경영학의 과녁입니다.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또는 갈 수 없는 이들이 군대를 가기 위해 안간 힘을 다 쓴다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기특합니다. 곧 징병 신체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뇌물을 주고받는 이들이 많아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나라는 휴전중입니다. 이제까지도 어느 정도 그랬지만, 군대 모르는 이는 이제 공무를 맡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잘나도 군대 마치지 않았으면 유권자들은 그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사실 ‘군대 잘 다녀온 이가 훨씬 낫더라’는 경험칙(經驗則)은 일반적입니다.

여대생들의 ROTC 열풍도 주목합니다. 사회의 핵심으로 떠오르며 남성들과 주도권을 다투는 여권(女權)의 거센 도전과도 맥을 함께 하는 현상일 터입니다. 연평도 비극은 여성들에게도 ‘군대를 모르면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에 관한 세상의 생각이 빨리 변하고 있는 것이지요.

뭘 얻을 수 있으니까 군대에 간다고요? 천만의 말씀, 참 시시한 생각이네요. 마음과 몸 바쳐 지켜야 할 나라를 가진 신성한 행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군임 됨은 그 자체가 위대한 의무이자 권리지요. 

‘겨레여 우리에겐 조국이 있다’고 이은상(李殷相) 시인은 웅변합니다. ‘심장의 더운 피가 식을 때까지’ 우리는 기쁘게 조국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입영’의 가장 큰 뜻입니다. 이는 조상이 그랬듯 후손을 위함이고, 나아가 인류의 평화와 직결되어야 하는 가치입니다.

요즘 해병대 지원자가 크게 늘었답니다. 군대는 놀이동산이 아닙니다. 당당한 우리 젊은이들이 대견합니다. 온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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