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장 주변 마을과 주민에 대한
배려를 찾을 수 없어
상수원보호구역이 해제되고
주변에 좋은 시설이 들어서면
땅값이 오르겠지 바라는 것이
지나친 욕심인가…
은산리는 정도전 사당이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 아니라
화장터가 있는 곳으로
기억될 것
정도전 사당이 있는 진위면은 정도전의 후손인 봉화정씨가 터를 잡고 500년 넘게 살아온 곳이다. 이곳에서는 봉화정씨 집성촌이 있는 은산1·2리, 안성시 원곡면 산하 1·2리 네 곳을 아울러 ‘산대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정효섭 은산2리 이장(75)도 정도전 선생의 22대손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12월 ‘은산리 화장장 유치 결사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고, 지난 3월 7일 평택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화장장 결사반대” “정장선 시장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물 맑고 공기 깨끗한 시골 마을에서 안분자족하며 살아온 그가 투쟁에 앞장서게 된 이유는 바로 평택시 종합장사시설 1차 후보지로 은산1리가 선정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효섭 이장은 주민의 삶과 공동체를 아랑곳하지 않는 평택시의 일방적 행정에 평생을 살아온 고향이 파괴되고 조상 대대로 지켜온 긍지가 훼손될 상황에 처했다고 판단해 반대투쟁에 나섰다.
은산1리가 장사시설 공모에 신청한 사실을 몰랐는가
나중에 알았다. 지난해 9월 열린 지역축제에서 은산1리 이장이 그런 얘기를 잠깐 내비쳤고 제가 “은산1리만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이웃 마을과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후 아무 말이 없다가 9월 28일 종합장사시설 1차 공모에 은산1리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때 저와 은산3리 이장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안 된다고 설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은산1리 이장은 은산1리 인구가 줄어들고 마을이 쇠락하니 발전할 계기로 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저는 장사시설 유치가 마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렇게 생각한 근거가 무엇인지
평택시 얘기를 들어보면 그동안 알던 화장장과 다르다고 한다. 장사시설을 지하에 설치해 연기가 날 일도 없고, 지상에는 공원과 주민편의시설을 설치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주민에게 좋은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저는 다르게 본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화장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화장장은 혐오 기피시설이라는 인식은 여전하다.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으니 앞으로 5년, 10년이 지나면 ‘혐오’라는 단어는 뺄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가 사는 현재 아직 그 단계에 못 미치니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오랜 전통과 역사를 무시하고
주민 의견을 철저히 묵살한 채
행정리 단위로 쪼개 공모 진행
은산1리 31세대 중 22세대가
동의했으니 찬성률 60%라며
왜곡해 건립 밀어부치면 안돼
평택시는 주민에게 설명하고
주민 의견을 적극 수렴해야
장사시설조례·공모기준
점검하고 고칠 건 고쳐야
3월 7일 은산리 장사시설 유치 반대 집회에서 주민들이 “공모 기준과 절차가 부실하기 짝이 없어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는데
평택시 공설종합장사시설 등 건립 추진에 관한 조례를 보면 “행정리 단위의 이장은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수렴 등을 통해 후보지 선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민 삶과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 조항이다. 이를 근거로 공모 기준을 정했으니 문제가 안 생기겠는가.
은산리는 수백 년 전 봉화정씨 선조가 터를 잡고 그 후대가 살아온 집성촌이다. 평택시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무시하고 주민 의견을 철저히 묵살한 채 행정리 단위로 쪼개서 공모를 진행하고 소수의 찬성을 찬성률 60%로 왜곡해 후보지를 선정했다. 그리고 은산1리에 사는 31세대 중 22세대가 찬성했으니 주민 찬성율이 70%을 넘겼다고 주장한다.
은산리 주민이 보기에는 전체 310세대 중 22세대가 찬성한 것이니 찬성률은 고작 6.4%에 불과하다. 100만 특례시를 대비해 종합장사시설을 건립하는 것이라면서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 형국이다. 이대로 가면 종합장사시설 건립사업은 상당한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은산1리와 맞닿아 있는 은산2리와 은산3리의 반발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은산2리는 원래 은산1리와 한 마을이었다가 분리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정도전 선생의 후손들이 살아온 봉화정씨 집성촌으로 노인정을 함께 사용할 정도로 사이좋은 이웃이었다. 도로명 주소도 은산길을 함께 사용해왔고 마을 길을 기준으로 왼쪽 집은 은산2리, 오른쪽 집은 은산1리일 정도로 구분 없이 살아왔다.
은산3리는 마을 앞에 화장장이 들어서는 형국이다. 후보지를 보면 은산1리와 은산3리의 경계에 있다. 은산1리의 경우 주택들이 태봉산 뒤편에 위치해 있어 화장장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 은산3리의 경우 화장장에 가까운 곳에 주민이 살고 있으며 마을 바로 앞에 화장장이 위치하게 된다.
비대위로서는 평택시와 적극적으로 협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3월 7일 집회 이후 평택시 복지국장, 장애인복지관 담당팀장, 평택시주민자치협의회 회장 등이 보자고 해서 잠깐 협의한 적이 있다. 그때 “뭘 해주면 되겠느냐”고 묻더라. 주민들이 왜 반발하는지 이해한다면, 주민 동의를 얻고 싶다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우리는 아직 거기까지 생각 안 하고 있다. 시가 내세우는 혜택은 유치를 신청한 마을을 위주로 제공될 뿐 화장장이 들어서면 피해를 보게 될 주변 마을에 대한 배려는 아직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려달라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 선생을 조상으로 모시고 살아온 봉화정씨 후손들은 조상 대대로 지켜온 소중한 공간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굉장히 크다. 그동안 지켜온 자긍심에도 상처를 입었다. 정도전 사당 근처에 화장장을 건립하겠다는 발상은 선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없는 것으로 여기는 분도 있다. 무엇보다 은산리는 정도전 사당이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 아니라 화장터가 있는 마을로 기억될 것이다.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로 그동안 규제에 묶여 저평가됐던 땅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던 주민이 느끼는 상실감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40년 넘게 묵묵히 농사를 지어오다가 규제가 풀리고 ‘주변에 좋은 시설이 들어서면 땅값이 오르겠지’ 하고 바라는 것이 지나친 욕심인가.
이곳 땅값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수십 년간 거래가 없어 평택의 다른 지역에 비해 저평가돼 왔다. 지난해 12월 23일 상수원보호구역이 해제되면서 많은 주민이 좀 나아지겠구나 기대했다. 그런데 화장장이 들어선다고 하니 그 기대감이 무참히 꺾여 버렸다. 평택시가 화장장 주변 지역에 얼마를 지원해준다고 한들 실제 주민이 체감하는 재산상의 피해가 더 클 수 있다. 화장터가 있는 곳의 땅을 누가 사겠는가.
평택시에 요구하는 바가 있다면
진위면 은산 1~5리, 송북동 동막마을, 안성시 원곡면 산하 1~2리 주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그 결과 전체 주민 60%가 찬성하면 장사시설 건립을 추진하면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현재의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장사시설 조례나 공모 기준을 점검하면서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평택시가 입지 타당성 조사를 하겠다고 하던데 주민 의견을 묻고 수렴해 그 결과를 반영하지 않고 진행한다면 건립을 강행하기 위한 형식적 수순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평택시는 주민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