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힘 없는 의지로 평택 지키는 나무 되고 싶어

김학정 오케이농장 대표가 한몽아가포럼이 올해부터 평택에 거주하는 몽골인들을 대상으로 진행 예정인 중장비 교육반 실습장으로 쓰여질 자신의 농장을 배경으로 서 있다.
김학정 오케이농장 대표가 한몽아가포럼이 올해부터 평택에 거주하는 몽골인들을 대상으로 진행 예정인 중장비 교육반 실습장으로 쓰여질 자신의 농장을 배경으로 서 있다.

 

5대째 팽성읍에서 살아와
농사 지으며 틈틈이 봉사
어려운 이웃 위해 쌀기부

 1966년 팽성읍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이 조선시대 때 원정리에 터를 잡고 살아와선지 농사를 짓는 것은 당연했다. 이제 둘째 아들이 농사를 물려받겠다고 하니 5대 김학정 대표에 이어 6대로 이어지는 셈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부모를 모시고 자녀를 키우며 틈틈이 시간을 내 자원봉사를 하다 보니 봉사시간이 2만 시간을 넘어섰다. 수확한 쌀을 직접 도정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했다. 몽골로가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평택과 몽골 간 인적교류에 참여해 몽골인들에게 농업기술을 전수했다. 오는 3월부터는 평택에 사는 몽골인들을 위한 중장비 교육을 시작하려 한다. 그렇게 김학정 오케이농장 대표는 자신의 농장 입구에 적어놓은 글귀처럼 “대자연과 동화된 농업인으로서 아무런 욕심도 없이 생명·환경·사랑을 성실하게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아왔다.

평택기계공고를 졸업하고 평택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회사 다니며 주말과 농번기에 농사를 지었는데 30대 중반 무렵인 IMF 경제위기 당시 창원으로 발령이 났다. 고향을 떠날 수 없다고 판단해 회사를 그만뒀다. 사람이 재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태어나 자라면서 지역의 많은 사람과 서로 낯을 익히게 된다. 직접 대화를 안 했어도 낯익으면 편하게 만날 수 있고 금세 흉금을 터놓을 수 있다. 제가 평택에서 살아온 30여 년간 낯을 익힌 많은 사람과의 인연이 소중했고 그 속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농업인으로서의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기성세대와 새롭게 유입될 젊은 세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농사는 종합 예술이다. 언제 볍씨를 뿌리고, 언제 모를 내야 할지 알려면 자연과 교감해야 한다. 이런 교감이 쌓이면 올해는 냉해가 올지 수해가 올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폭우가 쏟아질 때 새벽이라도 나가야 할 때가 있다. 바로 그때 물을 대지 않으면 물길을 잡지 못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은 오랜 세월 부모님과 조상들이 몸으로 체득하고 쌓아 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다만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농업기술의 발달, 주변 여건의 변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위기 등으로 물려받은 데이터만으로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온 제 경험을 더한 데이터를 아들 세대에 물려준다면 앞으로 농업이 발전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평택농업인이 정성들여
키우는 우수한 농산물 
평택시민이 알아줬으면

최근 밀 재배를 시작한 것도 젊은 세대에게 경험을 물려주기 위해서인가.

우리 세대는 어릴 때부터 밥을 먹어선지 밀로 만든 빵을 먹으면 소화가 잘되지 않고 밥을 조금이라도 먹어야 속이 편해진다.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빵을 먹어선지 밥을 먹으면 속이 부대낀다고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 아이들이 먹을 빵을 만들려면 밀을 수입하기보다 밀을 키워야 한다. 입맛이 다양해졌으니 농업인은 그에 맞는 작물을 재배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밀을 키워본 적도 없고 재배법을 배운 적도 없다. 일단 키워가면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만약 성공한다면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얼른 전수해줄 생각이다.

밀은 늦가을에 씨를 뿌려 6월 무렵 수확한다. 추운 날씨에 키우다 보니 병충해가 적어 재배하기 어렵지 않다. 다만 수확한 후 벼를 재배할 수 없다는 점이 흠이다. 벼를 키울 때 조생종은 6개월, 만생종은 7개월이 필요한데 6월에 심어 12월에 수확할 수는 없지 않나. 이모작을 가능하게 할 품종 개량, 대체 작물 발굴 등이 필요하다.

 

농사를 짓겠다는 결심을 후회한 적은 없는지.

안타까운 적이 많았다. 농민뿐 아니라 농산물을 사서 먹는 이들도 농업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한다. 매일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가 없이 살아도 사흘을 굶고 살 수 없다. 자식 굶기지 않으려면 어디 가서 남의 것이라도 훔쳐야 한다. 결국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게 된다. 식량안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32%에 불과하다. 쌀만 100% 자급하니 우리가 먹는 농산물 중 쌀을 빼면 거의 수입이라고 해도 된다. 식량을 외국에 의존하면 반도체를, 휴대전화를 잘 만들어도 소용이 없어진다. 외국에서 아무리 부당한 요구를 해도 식량을 끊겠다고 하면 버틸 수 없다. 그런데 정부는 쌀이 남는다면서 수매가를 낮추려 하고 있다. 농사짓는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으니 농촌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평택의 농업인들이 정성들여 우수한 품질의 농산물을 키우고 있음을 평택시민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경기도자원봉사센터에서 2만 시간 봉사자로 인정받았다. 농사와 자원봉사를 함께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자원봉사는 30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다. 바다와 해안을 뒤덮은 기름띠를 제거하려면 사람 손만으로는 부족하고 트랙터·굴삭기 같은 중장비가 필요했다. 마침 트랙터가 있어 현장에 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이후에는 눈비로 재해가 발생한 지역이 있으면 트랙터를 끌고 가 비닐하우스 철거, 도로 복구 등을 도왔다.

아이들과 함께 가족봉사단을 만들어 10년 정도 활동했다. 아버지가 봉사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또 봉사의 기쁨과 소중함을 눈으로 보고 느낀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의 보람이었다.

평소에는 소사벌레포츠타운에서 큰 행사가 열릴 때 교통정리·안내 봉사를 하거나 팽성보건복지센터에서 점심시간마다 배식·설거지 봉사도 했다. 꾸준히 오래 하다 보니 봉사 시간이 많이 쌓였다.

농번기 때에는 농사가 먼저다. 예외는 인명구조 요청이 올 때다. 수상구조 자격증이 있어 평택대교·팽성대교 등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열 일 제치고 달려간다. 세월호 참사 때에도 현장에 달려가 봉사했다.

 

봉사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알고 싶다.

자원봉사가 정착하고 활성화되려면 자원봉사에 대한 시민 인식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안전의식이 부족하면 제대로 봉사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아이들과 가족봉사단 활동을 할 때 한 복지시설에 빨래 봉사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감염병을 우려해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했더니 시설 관계자들이 보기 좋지 않다고 쓰지 말라고 하더라. 시설에 환자가 있을 수도 있어 건강을 위해 취한 조치인데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선한 마음의 봉사자들이 보람을 느끼며 건강하게 오래 봉사할 수 있게 배려해줘야 한다.

행사장에서 주차를 안내하다 보면 막무가내인 분이 있고 가끔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럴 땐 솔직히 봉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자원봉사가 활성화되려면 시민의식도 함께 개선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계속 봉사를 이어온 이유가 있는지.

바닷물은 97%의 물과 3%의 소금으로 구성됐다. 양은 3%밖에 안 돼도 바닷물이 썩지 않고 그 속에서 무수한 물고기와 해초가 살게 해준다. 봉사는 우리가 사는 평택이라는 바다에서 소금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소금처럼 제가 지역사회를 위해 해야 할 봉사를 책임감 있게 해내고 싶다.

 

2016년 한몽아가포럼 가입
평택과 몽골 간 농업 교류 
3월부터 평택 거주 몽골인
대상 중장비학교 운영 예정

한몽아가포럼에 가입해 평택과 몽골의 교류에도 활발하게 참여해왔다.

한몽아가(AGGA, Association of Global Green Artists)포럼(회장 전명원)은 2015년 설립됐다. 김범수 전 평택대 교수가 몽골에서 코이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몽골국립생명과학대와 평택시 간 교류가 이뤄지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저는 몽골에 일이 있어 가던 중 한몽아가포럼 분들을 비행기에서 만난 계기로 2016년 가입했다. 이후 매년 8월 평택시에서 울란바타르시를, 2월 울란바타르시에서 평택시를 각각 상호 방문하면서 인적 교류를 이어왔다. 코로나19로 2년간 교류가 중단됐다가 지난해 8월 재개했다. 그러면서 상호 방문에 그치지 말고 평택에 사는 몽골인들을 위한 봉사를 하자고 뜻을 모았다. 원평동에 있고 재한몽골인 온누리M센터협회(대표 전홍렬)와 협의해 평택 거주 몽골인을 대상으로 중장비 종합반을 운영하기로 했다. 굴삭기·지게차·크레인·트랙터 사용법, 농기계 수리, 자동차 정비, 드론 등을 교육할 계획이다. 제가 오케이농장을 교육장으로 제공하고 실습에 필요한 굴삭기를 한몽아가포럼의 최재교 이사가 기증했다. 오케이농장에 교육장을 만드느라 요새 분주하다.

 

중장비 교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몽골을 방문해 보니 산업화 초기 단계에 접어들었다. 초원에서 유목하던 몽골인들이 도시에 정착하면서 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비춰볼 때 한국에 온 20~30대 몽골인들이 중장비 사용법을 익힌다면 몽골에 돌아갔을 때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골 교육생들이 농기계 사용법에 능숙해지면 농장 일부에 주말농장을 조성해 농사 짓는 법을 익히고 수확한 것을 가져가게 할 생각이다. 이런 교류가 이어지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와 몽골이 농업 분야에서 서로 윈윈하는 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평택시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살면서 어렵고 힘들 때마다 이에 굽히지 않고 똑바로 자라는 한 그루 나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이 되듯이 지역사회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이뤄진다. 한 그루 나무가 성장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뿌리가 제대로 뻗지 못하거나 가지가 굽게 되면 탄탄하게 자랄 수 없다. 올바른 일이 아니면 굽히지 않아야 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그늘과 열매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하고 바른 나무로 성장하면 평택이라는 숲은 더 울창해지고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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