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고판화박물관-박물관의 역할과 나아가야 할 방향

<편집자 주> 평택시가 평택박물관 건립 타당성 조사 용역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1일 시민공청회를 개최하였다. 공청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박물관의 방향과 구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평택시민신문>은 시민들의 숙원사업이자 평택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박물관 건립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돕고자 서울시역사박물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등 해당지역 주민은 물론 여행객들에게도 사랑받는 6개 박물관을 방문해 전시관 구성과 운영방안에 대해 기획취재를 진행하여 7회에 걸쳐 연재 한다.

<글 싣는 순서>
①원주 고판화박물관
②군산근대역사박물관
③서울시역사박물관
④음성 철박물관
⑤지붕 없는 박물관 영월군
⑥수원박물관
⑦시민에게 외면 받는 박물관, 무엇이 문제인가?

 

돈 보다 생활 속에 문화가 녹아들어 있어야 삶의 질 높다
좋은 박물관의 조건, “당연히 좋은 유물을 품고 있어야”
박물관·도서관은 창의력을 길러주는 발전소
좋은 유물은 인문학적 경험과 예술적 영감이 빚어낸 작품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에 위치하고 있는 고판화박물관은 중앙고속도로 신림IC에서 한적한 도로를 따라 주천 방향으로 6km 정도를 이동하면 고즈넉한 치악산 자락에 명주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곳에는 한선학 관장(명주사 주지)이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 티벳, 몽골 등지에서 수집한 고판화 원작과 인출된 서적, 능화판, 시전지판, 부적판, 원본판화 등 모두 4000여 점의 판화물이 전시돼 있어 판화와 관련해서는 규모가 작아도 세계적인 박물이라 할 수 있다.

원래 군종장교였던 한선학 관장은 1998년에 제대하면서 현재의 위치에 새로 절을 지었다. 일반 사찰과 달리 박물관을 염두에 두고 지은 절이었다. 서울 인사동 골동품상 사이에서 유명한 승려였던 한 관장은 남들이 유물 수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시절,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판화물 수집을 위해 전국의 고물상을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한다.

한선학 고판화박물관장

국내 박물관교육학 1호 박사인 한선학 관장은 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유물을 교육의 소재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고찰하며 고판화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고판화 관련 유물과 이를 이용한 교육 방법 및 성과 등의 사례를 연구한 논문 ‘고판화의 박물관교육 내용과 방법에 관한 연구’로 박물관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박물관이 발전된 여러 나라의 경우 박물관의 유물 보전이나 전시의 기능을 넘어 교육기능이 강조되며 또 하나의 교육기관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제는 박물관이 갖고 있는 교육적 가능성에 주목해야 하며 박물관을 지역의 평생교육기관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판화박물관에 실시하고 있는 뮤지엄스테이를 비롯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은 바로 이러한 확신에서 나온 교육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의 삶의 질은 돈이 많거나 건강하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한 관장은 “궁극적으로 생활 속에 문화가 녹아있어야 삶의 질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체육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며 살아가듯이 음악이나 미술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활 속에서 음악과 미술이 녹아 있어야 하고 박물관이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창의력 키워주는 보물창고
13년 전 고판화박물관이 건립될 때만해도 전국의 박물관은 300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00여개가 넘는다. 한 관장은 박물관이 증가하는 이유로 “좋은 아이디어 하나 만으로도 큰 경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배워야 하는데 지금의 교육시스템에서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도서관과 박물관이 창의력을 길러주는 발전소가 되고 있어요.”

그는 특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책을 읽지 못하도록 옥죄고 있는 교육환경이 문제라며 “국민들이 인문학 서적을 읽고 좋은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에서 먼 옛날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창작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비로소 창의력이 길러진다”고 진단했다.

좋은 유물 없이 디오라마 같은 가상체험 시설 치중하는 박물관 외면 받아
한 관장은 박물관 기능의 핵심을 체험이라는 생각도 경계해야 한다고 봤다. “간혹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중에 국립중앙박물관도 체험비를 받지 않는데 왜 돈을 받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박물관 본연의 역할은 좋은 유물을 전시하는 것이고 체험은 생활 속에 녹여내기 위한 수단으로 체험비 책정은 최대 효과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결정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옛 선조들이 인문학적인 경험과 예술적 영감을 녹여내서 만들어낸 작품으로 세월이 흘러도 오히려 그 가치가 커진다”고 강조했다.

“박물관 열풍이 불면서 우후죽순 식으로 생겨난 박물관 중에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박물관들은 본질보다는 외면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좋은 전시물은 없고 건물 외관과 디오라마 같은 가상체험 시설 설치에만 치중하다보니 특정 업체들만 배를 불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어요.” 한 관장은 박물관이 제 기능을 다하려면 특별전시회를 주기적으로 진행해야 하고 좋은 전시물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평택박물관 건립, 사람들이 많이 오도록 해야 한다는 강박증부터 내려놔야
그는 시립박물관은 지역문화의 꽃으로 많은 지자체들이 박물관을 문화관광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처음부터 숫자에 연연하며 많은 사람들이 오도록 해야 한다는 강박증부터 버리고 브랜드 가치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좋은 브랜드 가치는 역시 좋은 유물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그는 “시의 역사나 옛 유물을 통해 새로운 평택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박물관 건립을 추진해야 한다”며 “규모가 작더라도 평택과 관련된 자료는 평택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고 다른 박물관에서도 대여해 갈만큼 가치가 있는 유물을 확보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지자체에도 하나 쯤 가지고 있으니 우리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버리고 차별화된 브랜드 가치가 형성되도록 평택시와 시민들이 힘과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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