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건 평택샬롬나비 사무총장

평택샬롬나비 사무총장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 혹은 메르스(MERS)의 공포가 실감난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메르스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2015년 6월 9-11일 3일간 한국갤럽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 58%로 나타났다. 15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서는 60.8%가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메르스에 감염돼 숨진 환자는 16명이다. 보건당국이 관찰 중인 격리대상자는 5000명을 넘어섰다.

6월 14일 삼성서울병원은 부분 폐쇄와 외래 입원응급실을 전면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결정했다. 일부 또는 전체가 잠정폐쇄되는 병원이 80개에 이르고 있다. 제주도 관광을 포함 국내 관광지도 직격탄을 맞았다. 외국인 방한 예약 취소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메르스의 진원지가 된 평택도 중앙언론들의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에서 행사가 있을 때 평택에서 왔다고 하면 기피의 대상이 되고, 타지역인들이 평택에서 모임을 갖는 경우 취소되는 것은 다반사였다. 평택시는 유령도시가 된 듯 전염 또는 죽음의 공포로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면서 경기는 심각하게 위축되었다. 이젠 메르스에 걸려 위험에 처하는 것보다 오히려 굶어 죽게 생겼다는 말이 돌았다. 요즘 대한민국 개발의 핵심에 있는 평택이 말이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메르스 감염 경로가 접촉이냐 공기냐, 진정세냐 확산세냐, 즉 4차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병원 내의 전파냐 지역사회 전파의 시작이냐, 사망자들이 지병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하고 있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를 더욱 자극한 것은 의학지식의 불확실성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다. 정부의 비밀주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투명한 정보공개로 치명타를 받았다. 세월호 사건이 국민에게 준 큰 충격도 정부의 목소리를 믿으면 죽는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의료전문가들의 말에 헷갈리는 이유는 그들이 정부편인지 의심하기 때문이다. 의료전문가들이 메르스는 사스(SARS)보다 덜 위험하다 해도 학부모들은 1주 혹은 2주 든 임시 휴교를 학교에 강력히 요구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뼈를 깎는 철저한 반성이 선행되면서 메르스 퇴치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사태수습에 앞장서서 노력하는 현장의 의사들과 간호사들, 그리고 보건소 직원들에겐 격려를, 여야 정치인들과 정부 관련자들에겐 메르스 사태 해결에 총력을, 각 시민과 시민사회기구들은 각자의 몫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무력한 지경에 이른 사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이루어져야 한다.

메르스 사태의 핵심 원인은 선진국 수준의 의료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한국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였다. 질병관리본부는 질병에 관한 한 대한민국의 컨트롤타워 아닌가. 그러나 질병관리본부 내 역학 조사 인원은 2명을 빼고 32명 모두 군복무 대체 근무자(공중보건의)였다. 이들 개인을 탓할 순 없지만 군 복무 대체 근무자들이 나라의 질병을 컨트롤 했다는 말인가. 군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알지 않는가. 군이란 제대를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이 중요한 자리가 특권층 자녀들의 군 복무 면피용이었던가. 전리품 찾기에 눈먼 장님들이 국민의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은 뒷전이고 신의 자리를 만들어 자기들만의 잔치를 한 것은 아닌가. 또 예산 편성도 그렇지 않은가. 국민의 생명과 행복에는 안중에 없는 권력자들이 전리품처럼 정부 예산을 배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은 허탈감에 빠졌다.

이제 이 나라의 이런 추한 꼴을 손주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면 전리품 리더십에서 섬김의 리더십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누가 영국의 윌버포스처럼 전리품 리더십에서 섬김의 리더십으로 이 나라를 바꿀 것인가. 영국이 1776년까지 프랑스, 스페인, 영국의 식민지에 공급한 노예 수는 약 300만 명이었다. 당시 노예무역은 국가 수입원의 3분의 1을 차지했을 정도로 영국 식민지 산업의 핵심이었다. 윌버포스의 노예제도 폐지운동은 큰 저항을 받았다. 윌버포스는 매국노라는 비방과 암살의 위협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윌버포스는 28세에 뜻을 세운지 56년 만인 1833년 7월 27일, 드디어 노예제도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윌버포스처럼 누가 우리 사회의 전리품 문화를 폐지하고 섬김의 리더십으로 역사의 획을 그을 수 있나? 아직도 찜질방에서 하룻밤 잠을 청하는 것도 사치라고 말하는 수십 만 명의 한국인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정치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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