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게 환대해준 평궁2리 주민들께 ‘보답’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적당한 곳을 물색하던 중 평택의 너른 들 가운데 위치한 평궁2리가 눈에 들어왔죠. 이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내려왔습니다.”
지명의 뜻대로 땅 전체가 나지막한 구릉이나 평탄한 저지대 평야가 많은 평택은 안성천․진위천이 퇴적한 충적평야로 구성되어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적합해 품질 좋은 쌀의 생산지다. 농사를 짓기 위해 적당한 곳을 찾던 나광국(55)씨에게 평택은 최적의 장소였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농사를 짓겠다고 말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물론이고 아내와 가족들이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성남에서 나고 자라 나이 서른에 삶의 터전을 버리고 팽성읍 평궁2리로 내려온 나광국 씨는 남편의 갑작스런 귀농 선언에도 믿고 따라준 아내가 고마웠다고 말한다. “25년 전에 믿고 따라준 아내가 고마워 이제부터는 아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죠”
초보농부가 70마지기(2만평)에 농사를 짓겠다고 나섰을 때, 다들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땅은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쪽잠을 자가며 일했다는 나 씨는 주변에서 농사 잘 짓기로 소문난 농부가 되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마을 이장을 맡게 되었죠. 타향살이하던 우리 가족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마을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요.”
이장으로 10년 동안이나 마을을 위해 일해 온 나 씨는 한꺼번에 4가지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농부, 이장, 신문배달, 택시까지... “한번은 이웃에 사는 동생이 찾아와 ‘형님 때문에 부모님께 야단맞는다’며 일 좀 그만하라고 투정을 하고 간 적도 있다”고 한다. “이장이 밥을 굶어 저렇게 열심히 일하겠냐”며 부모님께 혼났다는 하소연을 하고 갔다는 말이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지 이유를 묻자 나 씨는“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타지 사람을 반갑게 맞아준 주민들의 배려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답한다.
그토록 정들었던 마을을 떠나 용이동으로 이사 온 지 벌써 4년째로, 2010년 한 달 사이에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과 이별을 해야 했던 나 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이사를 나왔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평궁2리 주민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어요.” 이번에 기증한 마을회관 부지 423㎡(공시지가 기준 8천3백만 원)는 선친이 남겨준 땅으로 마을 어르신들께 항상 보답하고 살라는 유지를 받들어 기증하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양친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평궁리 학생들의 학업에 도움을 줄 계획입니다” 자식들 다 키워 놓고도 여전히 1인 3역을 하며 바쁘게 살고 있는 이유이다.
양친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재연장학재단’이라는 이름도 지어 놓았다는 나 씨는 힘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일해, 마음의 고향 평궁2리의 발전을 위해서 계속 노력하겠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나중에 노인회장 하러 갈 테니 자리 좀 비워두라고 했어요.”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마을회관을 생각하며 벌써부터 그 안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를 고민하는 나광국 씨에게 평궁2리는 나고 자란 고향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임이 분명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