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민신문-평택환경련공동기획] 부락산을 생태공원으로-2
<특별기고> 조 하 식 한광고 교사
산수유 깊은 향 속 청솔무 재주 넘는 봄 아카시아 향기 흐드러진 여름 재촉하고
아람불어 떨어진 밤송이 밟으며 사색 잠기면 눈[目] 즐기며 눈[雪]에 취하는 겨울이라네
작다란 산에 첩첩산중 유아독존 즐거움[樂] 있으니 여보게들 마음껏 짊어져[負] 보세
내가 사는 동네는 도농 복합 시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 형태를 띠고 있다. 큰 도로에서 약간 들어와 자리잡은 이곳은 언뜻 삭막한 아파트촌일 듯이 보이지만, 그 뒤쪽을 감싸고도는 푸르른 솔숲 덕택으로 사시사철 맑은 대기를 마시며 거처하는 소중한 터전이다. 관공서랑 은행들이 퍽 가까워 생활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는 다양한 운동시설을 갖춘 레포츠 공원까지 있어서, 부산스런 서울에서의 경험이 뇌리에 생생한 우리 부부로서는 그야말로 쾌적한 여건에서 상쾌한 느낌을 가지고 고맙게 살아간다.
우리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부락산(負樂山)은 원래는 불악산(佛岳山)이었단다. 세세한 내력은 잘 모르겠으나 글자에서 보듯이 절터가 많아 불교적인 인상이 남는 이름이었나 했더니, 언젠가 도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산명칭으로 바뀌어 있다. 즐거움[樂]을 지고[負] 올라가는 자그마한 뫼[山]. 밑에서 굳이 올려다 볼 것도 없어 뵈는 나지막한 산마루는 얼핏 보면 생기다만 조무래기 야산쯤으로 대수롭잖게 제쳐두고 말 것 같지만, 기실은 한번만 올라가 몸소 겪고 나면 그 등산로의 묘미에 한껏 매료될 수밖에 없는 내겐 늘 보배로운 산이다.
부락산의 봄은 산수유의 깊은 향과 함께 찾아든다. 소나무가 주목인 산 틈바구니에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면 산 속의 봄은 한층 무르익는다. 청솔무 한 쌍이 상수리나무 가지에서 재주를 넘고, 얼마 전 풀어놓은 산토끼의 뒷모습이라도 살짝 훔쳐보는 날이면 더없이 달뜬 기분이 된다. 하위수종인 떡갈나무며 도토리나무마저 담록색을 띠고 단장하기 시작하면, 땅속에서 움튼 갖가지 풀들까지 저들의 존재를 알려온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소리는 더욱 정겹게 들려오건만, 바로 옆 암자에서 틀어 논 카세트 독경음파는 한없이 처량하다. 고요한 오후의 여유로운 휴식을 인공으로 물든 둔탁한 목탁소리가 깨버리다니...... 때마침 부락산 남편 중턱에 가득한 아카시아꽃의 진한 향기가 콧등을 건드리면 이는 여름이 멀지 않았다는 대자연의 신호다. 유독 껌을 씹어도 아카시아껌만을 고집하는 내 취향이 한꺼번에 채워지는 느낌이다.
알만한 것은 다 알고 지내는 죽마고우 같은 산. 알면 알수록 더 가까워지고 싶은 연인 같은 산. 언제나 부담 없는 형제처럼 친근미 넘치게 다가오는 산. 나는 부락산이 사랑스런 아내만큼이나 좋다. 한두 시간 남짓 언제라도 탈 수 있는 등산로가 번듯해 좋고, 비 올 때나
눈이 올 때 험하지 않은 산길이어서도 좋다. 인적 드문 오솔길에 접어든 기분으로 잔잔히 거닐 수 있는 산책길 같아서 좋고, 군데군데 물맛 좋은 약수터가 반겨주니 더없이 좋다.
흐무러진 밤꽃 향기에 흠뻑 취했다가 깨어나 보면 어느새 여름이다. 부락산에는 유난히 밤나무가 많다. 밤나무가 주는 이로움은 그 특유의 밤꽃 내도 냄새지만 무엇보다 굵고 짙은 그늘이 압권(壓卷)이다. 무더운 여름철에 작렬하는 태양을 가려주는 것만큼의 혜택은 없지 싶다. 어디 그뿐이랴. 아직 여물지도 않은 밤송이를 못살게 구는 몰상식한 자들로 인해 해마다 모진 수난을 당하면서도, 크고 작은 밤나무는 변함 없이 시민들에게 야생밤의 진수를 선사한다. 지긋이 기다렸다 같이들 나누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하나라도 더 챙기겠다고 가지를 분지르고 나무에 올라타 곡예를 부리듯 아우성치며 지레 털어 가는 못난 이기심이 못내 안타까울 따름이다.
부락산에는 그 코스마다 적당한 굴곡이 있어서 그런지 유난스레 자전거 트래킹 족이 많다. 가족 단위의 미국인 그룹이 재잘거리며 지나가는가 싶으면, 한국인 동호회 무리가 삼삼오오 그 뒤를 따른다. 한때나마 등산객에게는 불편한 족속으로 여겨졌던 그들마저 산자락을 끼고 도는 시오리 자전거 도로가 난 뒤에는 그곳으로 많이 이동한 때문인지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좁은 길에서 서로 마주치기라도 할라치면 조심스런 질주로 상대를 배려할 뿐만 아니라, 누구랄 것도 없이 먼저 깍듯이 예의를 지켜 자연스레 산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간다.
아직은 이르다 싶을 때 한사코 밤에 손을 대는 사람을 하나라도 만나면 이미 가을은 온 것이다. 이럴 때면 아내와 눈총을 주며 지나야 그나마 직성이 풀리던 버릇도 어느덧 사라지고, 우리라도 밤 바르는 대열에서 빠져주는 것이 저들의 조급증을 조금은 덜어주겠다 싶어 지금은 부락산 밤맛을 본 지도 꽤 돼 간다. 그런데 가을 산행을 하다보면 여기저기 널브러뜨린 밤송이들 사이에서 어쩌다가 개평을 얻을 때도 있고, 아람불어 떨어진 송이를 통째로 줍는 즐거움에 아이처럼 환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라도 남아 있던 동심 어린 감성마저 서서히 사그라지는 걸 보노라면, 이젠 세상만사에 초연해 가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일상적 관심사로부터 애써 등을 돌리며 체념을 배워 가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를 일이다.
부락산에는 두 개의 작은 정상이 제법 우뚝 서 있다. 내려다 뵈는 누런 들판이 점점 작아져 논바닥으로 변할 때쯤 겨울은 소리 없이 우리 곁에 성큼 와 있다. 널리 펴진 소나무 군락과 심심찮게 눈에 띄는 짙푸른 잣나무 탓에 황량한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겨울산 특유
의 스산함만은 숨길 수 없나보다'는 말을 아내와 나눈 적이 있다. 차가운 공기가 스치는 이곳에 세찬 바람이 불어오기라도 하면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무색치 않아지니 거드는 말이다.이를 단번에 씻어주는 존재가 바로 하얀 순백의 눈송이다. 눈이 내린 부락산은 너무도 아름답다. 어찌 눈 덮인 산치고 아리땁지 않고 올라가고 싶지 않은 산이 있을까마는, 우리 부락산은 그 가운데서 백미(白眉)가 분명하다. 기껏해야 해발 150.5 미터로 높지 않으니 위험하지 않아서 좋고, 가파른 산행길처럼 미끄러질 바닥이 흔치 않으니 그러하다. 조금만 주의하면 눈[眼]을 즐기며 눈[雪]과 더불어 산에 오를 수 있으니 겨울산이 이만하면 내겐 특권이지 않은가.
맑은 날 정상에서 고개를 들어 멀리를 보면 황해 바다 서해대교가 보일 듯 말 듯 손짓하고, 북녘으로 보이는 오산 시내는 훤히 트여 시원스럽다. 남쪽 벌판에는 따로 떨어졌다 한 도시가 된 평택 시가지가 눈앞에 바짝 펼쳐져 있으며, 조금 멀찍이는 성환 읍내가 눈안에 들어온다. 거기서 동쪽으로 머리를 돌리면 좌로는 덕암산 줄기가 뻗쳐 테봉산까지 맞닿아 있고, 우로는 춘향이길의 추억을 따라 충신 원균장군의 애마(愛馬) 울음이 팔용산까지 메아리쳐, 나처럼 작은 자의 눈매로 뚫어볼지라도 첩첩산중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며 호들갑스런 과장이라도 마구 떨고픈 형세니, 이토록 작은 산에서 저토록 큰산의 위용을 어디 간들 누리겠는가. 남동편 산너머로 보이는 안성의 집들과 평야는 미처 다 보지도 못 하고 내려옴을 어이하리. 부락산에서 짊어지고 내려오는 즐거움은 많고도 무거울수록 신바람이 난다. 거의 빼놓지 않고 아내와 둘이 오르내리는 낭만도 그렇거니와, 누가 뭐라든 작다란 명산에서 자연을 만끽하고 담소를 나누며 걷는 등산로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은 다시없는 행복이다. 경관이 수려하고 고운 것도 감사하지만 대충만 따져봐도 여남은 군데가 넘는 내리막길 가운데 어느 코스로 하산한대도 무리가 따르지 않으니 내딛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을 감안하여 이곳에 정착한 지도 어언 십 년이 나우 됐다. 직장에서 약 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연유로 주위로부터는 가끔씩 '출퇴근하기에 너무 멀지 않느냐'며 은근한 이사 압력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그 때마다 내 집에 대한 장황스런 자랑보다는 그냥 빙그레 웃음으로써 그럴 뜻이 없음을 넌지시 알리곤 한다. "우리 동네는 살면 살수록 참으로 정이 드는 곳이라오." 이는 이따금 내 집에 찾아오는 손님을 향해서도 변함없이 여기를 소개하는 말이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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