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서정동 요셉의집 윤 아네스
요셉의 집 원장 윤아네스(72세). 그녀의 본명은 윤금준이다. 윤원장은 지금의 요셉의 집을 운영하고 자신이 사회복지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요인을 주변에서 도와준 여러 은인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 감사하며 인터뷰에 응한다.
요셉의 집은 10년 전부터 서정동 로얄프라자가 있는 인근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무의탁노인중에서도 치매나 중풍, 마비증상 등 장애가 있는 30여명의 노인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72세의 고령에도 아랑곳 않고 식당일에서부터 노인들의 잠자리까지 그녀의 손끝이 안닿는 곳이 없다. 힘들고도 다른 사람들이 손을 놓는 일을 도맡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윤원장은 일제시대와 6,25사변 등 많은 시대적 어려움을 헤쳐 나온 작은 체구의 여인이다. 그녀는 강하다. 지난 69년 지병으로 남편을 잃고 32년동안 2남2녀를 굳굳하게 키우며 살아왔다. 힘든 세월과 역경의 시간들. 그러나 목소리는 당당하고 행동과 태도는 자신이 넘치며 하는 말마다 대학교수 못지 않게 유창하다.
그때당시 고등공민학교를 졸업한 윤원장은 6.25가 터지자 전쟁 고아들을 모아 돌보기 시작했다. 그의 봉사활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분교마다 다니며 가르치는 교육현장에 뛰어들었다. 남편과 사별후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에 돈을 벌어야 했던 그녀는많은 돈을 벌어야했고 당시 여자의 몸으로 건축사업에 뛰어들어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모았다. 그렇게 많은 재산을 모았어도 자신을 위해 쓴 돈은 없다. 모두 봉사자금으로 쓰여진다. 87년부터 3억원의 사재를 털어 서울에서 강원도를 오가며 무의탁노인들을 돌보는 방문봉사를 계속해 왔고 10년전부터는 송탄에 요셉의 집을 운영, 지금까지 거동도 힘들고 몸 하나 의탁할 데 없는 노인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윤원장이 많은 자신의 돈을 들여 봉사활동을 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카톨릭신자로서의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고 남편없이 여자 혼자의 힘으로 4남매의 자식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게 돈을 벌게 해 준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다시 환원시키고 싶은 것이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 '사회봉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그냥 왔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현세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가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 윤원장의 개인적인 철학이기도 하다.
4남매를 키우던 시절, 윤원장은 참사랑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이지를 깨달았다. 온갖 아픔과 고통속에서도 그녀가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위로가 그녀를 당당하게 키워낸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받기만 할 수 없어 그녀는 어렵고 힘든 작업을 쉬지 않는다. 이렇게 깨달은 인생관을 윤원장은 그녀를 찾는 젊은이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지식이든, 능력이든, 부를 갖고 있든 어느 위치에 있든지 간에 약하고 어려운 사람과 함께 하고 돕는 것이 가장 올바른 삶이라고 당부한다.
"부자는 밥 한그릇을 다른 사람들과 안 나눠 먹지만 가난한 자는 죽 한그릇을 이웃과 같이 나눈다"는 그녀는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라 설명하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24시간 같이 하다보니 자연히 자신도 낮아지는 겸손한 생활이 몸에 배고 짧은 인생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었다고 전한다.
윤원장은 요즈음 상도일리에 있는 부지 1천여평에 2백여평의 건물로 새로 짓는 '요셉의 집' 신축현장을 왔다갔다 하느라 바쁘다. 정성도 쏟아붓는다. 배 고픈자들이 배불리 먹었을 때의 기픔과 아픈 사람들의 통증이 가라앉았을 때의 행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런 그들의 얼굴빛과 눈빛을 기억한다. 그네들에게 좀더 좋은 환경의 '요셉의 집'을 지어주고 싶었다. 그안에서 노후를 그래도 좀 편안하게 지내게 해주고 싶어 오늘도 현장에 나와 천장도 쳐다보고 지붕도 올려보고 벽면도 만져보며 포근한 인간사랑 둥지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또 하루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