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김지훈주브라질대사관 참사관
김지훈
주브라질대사관 참사관

1990년대 평택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세계화’였다.

국경이 무너지고 무한경쟁의 시대가 열렸으니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김영삼 대통령의 쌀시장 개방 반대 발언이나 농협에 붙은 ‘신토불이(身土不二)’ 포스터처럼 세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미국이 주도해 관세를 낮추고 자본 이동을 자유롭게 만들어 세계 시장을 사실상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평택이 급성장한 것도 세계화의 흐름을 기민하게 포착해 세계 곳곳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자 삼성전자는 300조원 이상을 투자해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공장을 세웠다. 평택항은 자동차 수출 등 무역 거점으로 성장해 국내 5대 항만 중 하나가 되었고, 도시 곳곳에는 베트남과 네팔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정착했다. 1980년대 초등학교 시절 반 친구들의 부모 절반 가까이가 농부였지만, 2021년 기준 농림어업 종사자는 전체 취업자의 3%에도 미치지 않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녀를 공부시켜 산업 인력으로 키워낸 부모 세대의 결단이 만들어낸 변화였다.

그 세계화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지난 30년간 미국 기업들은 값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 멕시코,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겼고, 그 대가로 미국 내 일자리는 사라졌다. 코로나19는 비용 효율만 좇던 세계화 시대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함을 드러냈고, 미국인들은 마스크 한 장조차 자국에서 생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자유무역의 이상은 여전하지만 현실은 전략적 자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세계화 시대가 저물어 가고 
‘전략적 개방’을 핵심으로
하는 반(返)세계화 시대 도래
평택과 대한민국, 전환의 파고
넘기며 세계화 2.0시대 맞아야

중국은 초창기부터 세계화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했다. 2001년 WTO 가입 이후 저관세 시장을 이용해 수출을 늘려 국부를 축적하는 한편, 외국 기업의 중국 진입은 자국에 유리한 것 중심으로 엄격히 제한했다. 또한 국가 주도의 투자를 통해 화웨이 같은 기업을 키웠으며, 일대일로 정책으로 세계 물류망을 장악해갔다. 미국과 경쟁이 심해지자 2020년부터는 쌍순환(雙循環) 전략을 내세워 디커플링, 즉 경제권 분리에 본격 대비해 왔다.

이처럼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MAGA)’, 중국은 ‘내수 강화’로 나아가며 세계는 다시 벽을 세우고 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내 한국 근로자들의 체류 문제는 자유로운 인적 이동이라는 세계화의 흐름을 되돌리는 ‘반(返)세계화’의 극적인 사례다. 국경을 닫더라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게 된 것이다.

세계화 시대의 조류가 ‘무한 개방’이었다면, 반(返)세계화 시대의 핵심은 ‘전략적 개방’이다. <도덕경>의 소국과민(少國寡民) 사상이 주는 교훈처럼 적정 수준 및 분야의 교류와 자립의 병존이 필요한 때다. 평택의 반도체 산업은 계속 세계와 연결되어야 하지만, 2나노급 반도체와 같은 첨단 제품의 제조와 수출은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반면 ‘별의 관문(Stargate)’ 같은 초대형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사업은 전략 산업을 넘어, 문명 산업으로 부를 만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대체로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는 있지만, 한국 기업들에도 대규모 데이터센터,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이는 고대역폭 반도체(HBM), 데이터를 학습하고 생성하는 대규모 언어모델, 이를 활용하는 의료·미용·교육·물류 등 각종 연결 분야까지 산업 주도권을 쥘 기회가 주어져 있다. 평택과 대한민국은 이 전환의 파고를 잘 타면서 세계화 2.0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