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빈집

 

속이 비었다
이 구석 저편 할 것 없이
제멋대로 허물어지고
떨어져 나간들 제 알바 없이
어제를 모두 잊었다
갓난아이의 되바라진 웃음과
노모의 신음도 떠나고
삭풍 새어들던 문풍지도 뜯기어
헛소리만 새어든다

아낙과 사내의 숨소리로 이어지던
얄팍한 초저녁 간담마저도
출입을 끊은 쥐들의 자취처럼
두고 간 괘종시계 소리를 따라 
박자를 놓친 채 사라진 밤
빈집이란 문패 같은 이력들이
고요한 밤을 수군거리며
빈집의 역사를 꿰매고 있다 

 

 

시장표

 

비릿함이 일상이 된
목소리들이 향기롭다
더러는 풋내음도
촌부의 이목을 끌기도 하여
울안 살구나무에 달린 떡살구들
까마득히 잊은 채
새콤한 향에 취해 시큼한 침을 삼키며
살구를 주워 담는다
고소함이나 얼큰함이 밑천인 
장터국밥이 시장기를 모으면
줄레줄레 모여드는 걸음들이 바쁘다

메이드 인 시장표 인심이
수북이 담아지는 곳
집으로 향하는 길목
잡냄새 속에서
메뉴를 선발해 내는
초능력이 생겼다
바닥이 도톰한 시장표 양말이
자꾸만 그 길로 향하게 하는
나도 시장표인가
통복 시장 앞에서 멈칫멈칫
출처가 의아하다 

 

권혁찬 시인 전 평택문협회회장
권혁찬 시인
[현대시학] 등단
전 평택문인협회 회장
현대시학회 회원
경기도문학상 우수상, 평택예총 공로상
시집 [바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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