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규의 문화살롱 17
독서와 영화를 좋아했던 아이
조각가 박정우는 서울 태생이다. 주로 삼선동과 혜화동 일대에서 살았다. 어릴 때는 손재주가 남달랐다. 중·고등학교 때는 비교적 성실한 학생이었다. 간혹 소심하게 탈선했지만 부모님이 눈치챌 정도는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이 그렇듯 어머니도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전형적인 한국의 누이였다. 배움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 어머니는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향학열이 대단해서 박정우가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면 항상 식탁에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박정우도 책을 많이 읽었다. 문학작품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어머니가 봤던 책들도 가져다 읽었다. 어머니의 책 중에는 ‘고통받는 환자들과 환자에게 멀어진 의사들을 위하여’라는 책이 기억에 남는다. 내용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을 통해 단단하게만 보였던 세상의 구조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청소년기에는 영화도 많이 봤다. 당시 대학로에는 CGV 같은 멀티플렉스영화관이 개관했다. 영화는 일주일에 3편 이상 봤던 것 같다.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도 많이 봤다. 당시 CGV 영화관에는 예술영화관을 별도로 운영했다. 책과 영화를 보면서 책이나 영화 주인공의 습관과 생각을 따라 하는 일종의 정신적 코스프레를 많이 했다. 이들처럼 멋진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상상이었다. 독서와 영화는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 형성에도 크게 도움 됐다.
고등학교 시절 장래 ‘공무원’이 되면 무난하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도 딱히 뭐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아서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박정우의 손재주를 기억했던 누나가 ‘조각’을 해보면 어떠냐고 권했다. 한 번도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귀가 솔깃했다. 부모님도 아들의 진로를 응원했다. 조소를 전문으로 하는 미술학원에 등록해서 1년 동안 열심히 배웠다. 당시 딱히 싫증내지 않았던 것을 보면 나름 적성에도 맞았던 것 같다.
대학을 다니며 조각에 대한 소질 확신
중앙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그림 세계가 넓고 다양했다. 예술에는 조각 외에도 훌륭한 사진작가나 화가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입학 초기에는 사진작품이나 화가에 관심이 많았다. 미술의 기초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방학을 이용해서 미술학원 수강을 받기도 했다.
대학에서 수강했던 과목들은 모두 흥미로웠다. 다양하게 탐독하고 열심히 배웠다. 하지만 진로에 대한 걱정은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 환경에서 조각가로 평생을 살려면 세상이 알아주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거나 대학교수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제3의 진로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래서 한때 포토샵 일러스트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두세 차례 미술 공모전에 입상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공식 대회에서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입상까지 하고 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소질은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대학을 졸업할 때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연구조교를 하면서 학비를 면제받는 조건이었다. 대학원에서는 작품활동과 함께 독서를 많이 했다. 주로 실존주의 계통의 철학서나 문학작품을 많이 읽었다. 철학자나 문학가의 멋진 언어에 매료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무적(無敵)’이 된 느낌을 받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모순과 아픔을 치유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인간(人間)’에 관심을 가졌다. 책 속에 담긴 인간들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삶과 특징, 본질에 대한 재인식이었다.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절규’, 프랑스 출신의 예술가 마르셀 뒤샹의 ‘샘’을 통해서도 예술적 아이디어와 영감을 받았다. 이들 작품을 보면서 인간 내면에 담긴 순연한 가치관과 우리가 처한 현실의 괴리도 깨달았다. 박정우는 작품의 형식과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고 작품이 말하려는 철학적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같은 학습 과정에서 독창성을 상실하고 2차적 생산물로 전락해버린 현대예술을 극복해야겠다는 사명감도 가졌다. 대학원 시기 박정우의 작품 가운데는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많다. 인간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밝혀 삶의 특징과 본질을 발견하려는 구도적 작품이다.
작품에 철학적 영감을 넣으려고 노력
박정우는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를 통해서도 영감을 받았다. ‘캠벨 수프 캔’은 앤디 워홀의 예술적 스타일과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작 중 하나다. 워홀은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통조림회사 ‘캠벨 수프 캔’을 통해 자본주의적 대량 생산과 대량소비의 반복성과 균일성을 비판했다. 또 익명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이고 도시화 된 현대사회 그 안에 내재한 일상의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려고 했다.
박정우는 앤디 워홀이나 뒤샹처럼 현대미술은 특정 사조에 편승하기보다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중시한다고 말한다. 때론 주체와 객체의 개념이 바뀌기도 하고 뒤섞이기도 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독서나 영화, 예술작품을 통해 얻은 정보는 사실 다른 사람의 시각과 해석이므로 끊임없이 재해석하여 독창적으로 작품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쯤 이전의 생각과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돌아봤다. 비판적 접근 속에서 근본적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작품의 이미지와 양식, 기법을 중시했던 이전의 경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관점과 철학이 담긴 작품 세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적금만기’ 시리즈는 이 같은 고민 속에서 탄생되었다.
박정우는 ‘적금만기 시리즈’에서 인간의 특성과 본질에 주목했다. ‘적금’이라는 단어가 갖는 ‘과거·희생’이라는 개념과 ‘만기’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보상·희망·미래’라는 이미지를, 과거와 미래는 있지만 현재가 부재한 현대인의 삶에 빗대었다. 박정우는 현대인들은 과거와 미래 사이를 오가며 고통을 감내하고 희망이라는 쾌락에 허우적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현재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면서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적금만기’ 시리즈 중에서 ‘크레인을 달고 있는 성기’는 박정우의 예술철학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박정우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성공한 부자의 정원처럼 화려하지만 품격과는 거리가 먼, 현재를 상실한 막연한 희망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고 있지 않은지’ 질문한다.
관객의 사유를 확장시키는 작품을 만들 것
‘사드의 가위바위보’ 시리즈는 ‘사디스트’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사드 후작의 ‘소돔 120일’에서 영감을 받았다. 박정우는 이 책에 묘사된 성적 부분을 돈으로 바꿔 해석하면 인간의 성적 욕망뿐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현대사회는 그것이 성(性)적 쾌락이든 그 무엇이든 더 높은 자극을 원하는 가학적인 사회로 변하고 있는데 ‘소돔 120일’은 그와 같은 사회적 모순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박정우는 이 같은 생각을 성기, 벌레, 크레인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작품화했다.
박정우는 성실한 작품활동만큼이나 수상과 전시 경험도 무척 화려하다. 2016년 중앙대학교 SPACE 1984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뒤로 모두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단체전에도 8회나 참여했다. 수상은 2014년 제7회 대한민국힐링미술대전 누드부문 우수상에서 시작했다. 제24회 MBC 한국구상조각대전에서도 특선했고 이후 여섯 차례 더 입상했다.
조각가 박정우는 구르는 돌과 같다. 쉬지 않고 작품의 변화와 발전을 꿈꾼다. 이것은 조소를 시작할 때부터 가슴에 품고 있었던 화두이기도 하다. 박정우는 자신의 작품 이미지가 너무 구체적이어서 아쉽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작품은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지만 관람객의 사유를 제한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논리성을 감추고 관람객의 사유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감각적 이미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관념적 논리나 이성을 깰 수 있는 감각적인 작품, 이것이 조각가 박정우가 꿈꾸는 미래의 작품세계다.
서울사람 박정우가 평택에 정착하게 된 것은 결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결혼 전에도 안성의 중앙대 예술대학을 다녔고 대학원 졸업 후에는 유천동 부근의 비닐하우스를 빌려 작업했기 때문에 좀 더 오래된 인연이지만 본격적인 정착은 아무래도 결혼 이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평택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안정리 예술인광장의 레지던스 공간에서 작업했고 공간조성 프로젝트나 각종 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예술기획에 대한 경험도 축적했다. 3년 전부터는 대안공간 루트 최승호 관장의 도움을 받아 고덕면 동고리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근래에는 중앙대학과 충남대학에 출강하며 곧 박사과정에도 진학할 생각이다.
인터뷰 말미에 평택시의 문화발전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박정우 작가는 ‘훌륭한 전시공간 마련’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평택시가 피렌체의 우피치나 마드리드의 프라도,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 같은 명품 미술관을 갖는다면 도시브랜드 향상뿐 아니라 문화예술 발전과 관광산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평택인문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