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한도숙 소사벌역사문화연구소 대표
한도숙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소사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예로부터 무섭고 힘들다는 남태령 가는 길. 여전히 매연 날리는 비탈길을 지키는 경찰관들. 오늘, 이 고개에 1894년 우금치를 넘지 못해 천추의 한을 남긴 농민군 온다는 소식 듣고 고갯길 입구부터 관군이 중무장 진을 쳐 놓았다

“농민 여러분, 여러분의 집회는 불법입니다. 지금 당장 해산해 주십시오.” “트랙터는 절대 운행이 금지되었으므로 귀향하기 바랍니다.” “교통체증으로 시민 피해가 큽니다. 당장 해산하시기 바랍니다.”

일흔이 넘은 할머니도, 팔순 가까운 할배도 생전 처음 남태령에 아스팔트 농사로 입에 풀칠이라도 해 보려 사람들 따라 뒷줄에 앉아 주먹을 치켜든다. 농민수당 육십만원 친구들하고 막걸리값 정도고, 노령연금 이십 몇만원도 손주 녀석 과잣값도 안 된다. 여기라도 앉아서 주먹이라도 치켜들면 윤석열을 파면시키고 무작정 거부한 법이라도 통과시키지.

농민들은 그래도 나라도 생각하고 생명도 생각하는데! 누가 보태주는 것도 없이 살려니까 고생이 말이 아니라지요. “고추도 심으면 망하고, 작년에는 나락에 메루(멸구)가 먹어 망하고, 비료도 오르고 기름도 오르고 모든 게 다 오르는데 쌀값은 떨어지니 그래서 어렵습니다.”

평생을 일하고도 늙어서 데모하러 가는 것이 숙명인 듯한데 앞에 앉은 국회의원 발언대에 나가자 동료 의원 놈들이 딱 농민 같다고 했다. 그래, 농민들은 못생기고 까맣고 칠칠치 못하지. 니들이 정한 농민들의 모습으로 그래 남태령에 앉았다.

남의 돈 한 푼도 안 먹고, 헛된 것 안 보고, 거짓부렁 한 번 못 해 본 무지렁이다. 산모퉁이 흙밭에서 냉이도 캐고 달래도 캐서 장에 가서 팔아 손주에게 체면치레도 한다. 가을이면 깨도 털고 콩도 털어서 한 되 팔고 두 되 팔고 게우게우 여기까지 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누구도 나한테 시비 걸지 마라.” “이래 봬도 동네에선 똥고집에 무대포로 소문났으니….” “저기 저 양반 저 마이크 나도 한 번 잡아 보고 소락떼기 한 번 질러 볼라요!”

시내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전봉준 트랙터가 남태령을 지날 거라는 소식에 며칠 동안이나 목을 매고 남태령에서 기다렸다고도 하고요. 지금도 남태령역에서 꾸역꾸역 사람들이 밀려오고 있다.

 

“남태령 길은 

이 길을 잠깐 지나는 것이 아니라 

불우했던 한 시대를 이어 

희망의 시대로 넘어가자는 것이지”

“누가 또 뭣 하러 여기를 오시겠습니까. 꿈에나 올 겁니까. 좋은 경사 났다. 트랙터 보러 온다. 반갑고 반가워서, 전봉준 투쟁단 모자도 건네주고 머리띠도 매어 주고 꿀떡도 먹여주고 꽹과리 치고 나발 불고. 아! 이것이 대동인가!”

부러 막은 것도 아닌데 관군이 막아버려 못 가고 있는데. 어쩌라고! 경고 방송은 지랄인지요!

오늘 밤을 새우더라도 남태령은 꼭 넘어야 한다고, 우리 몇이 남태령 넘는 것이 아니잖느냐고.

남태령 길은 이 길을 잠깐 지나는 것이 아니라 불우했던 한 시대를 이어 희망의 시대로 넘어가자는 것이지. 새로운 질서, 봄이 오는 마당에 솜털 부여 싸고 나오는 새싹들. 그거를 거부하는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시상이 아니라고. 평생을 손해 봐 가면서도 땅강아지처럼 흙만 파댔지만, 오늘같이 재미지게 파는 것은 첨이라고. 진짜로 윤석열 파면은 받아둔 밥상인 거라고.

그 외로움의 깊이가 화로에 꺼져가는 불처럼 가물거리다가 이제 불현듯 불어대니 이 많은 사람 난데없는 보릿고개도 아니고 참으로 눈물겹고 또 눈물겨운 고갯길이다.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시려도, 그만 카악 죽어버리지 못하고 살아온 세상. 남의 집 일도 해주고 밭도 갈고 구들장도 놔주고 그렇게 살았지. 70년도에 새마을 운동할 때는 인자는 잘살게 되나 했는데…. 농민들은 봉이여. 함평 고구마 보상투쟁에 안동감자종자 투쟁에 사람이 여럿 상했잖아. 80년대 소몰이 투쟁하고 물세 투쟁도 좀 심하게 했어. 근데도 하나도 안 바뀌어. 그래도 두 눈 부릅뜨고 건너기 어려운 풍파, 갈쿠리 같은 손으로 헤치며 살아왔다. 근데 90년도 되니까 농산물 수입개방 정책이라며 농사짓지 말라구 얼매나 들쑤셔댔나.

가도 가도 끝없는 남태령 고갯길마냥 이제는 나이도 있구 마지막으로 오르는 일이 될 터이지만…. 생의 마지막 자리를 찾아가는 연습 같은 남태령 대첩, 빨리 끝내고 고추 모종해야지.

겨울난 자리도 치워야지. 헐 일이 많은데. 그래도 내 받아둔 밥상처럼 호미질하며 집이 있는 게 좋지. 빨리 끝내고 올해도 농사짓자.

쉽사리 놓지 못할 것은 호미자루 낫자루여. 평생을 쥐고 들여다보는 저 붉은 흙덩이를 뒤돌아보면 뿌듯해지는 겨…. 그러니 어찌 놓을 수 있을까. 그냥 저기 황토밭 고랑에서 숨을 딱 거뒀으면 좋겠어.

남태령에서 눈에 선하게 들어오는 함성 가득한, 그것도 젊은이들이 외치는 “차 빼라” 함성이 귓전에 맴도는데…. 내 이승의 버팀 자리 같은 그런 황토밭에서 축제가 벌어지면 참 좋겠어.

*이 칼럼은 전국농민회총연맹이 3월 25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고개 일대에서 개최한 ‘윤석열 즉각파면! 내란세력 청산! 전봉준 투쟁단 서울 재진격’ 결의대회에 참가한 필자가 보내온 현장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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