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음악 근대화의 선각자
평택 출신 지영희가 직접
제작·연주한 절금(切琴)

지영희 명인의 유품 ‘해금’이 경기도 등록문화유산으로 확정됐다.

3월 27일 평택시에 따르면 ‘지영희 유품 악기 해금’은 지영희가 1950~60년대 직접 제작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해금에서 발견된 바 없는 분리형 절금(切琴)이어서 1970년대 이후 제작된 해금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근대기 전국 공연이 많았던 민속악 연주자가 휴대하기 쉽게 해금뿐 아니라 가야금·거문고·아쟁 등을 절금해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지영희 유품 해금은 전통악기를 근대 악기로 개량한 시초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절금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해금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는 평가다. 지영희 명인은 1972년 미국 카네기홀 공연과 뉴욕 교육부가 촬영 제작한 한국전통음악교육 영상에서 이 해금을 연주했다.

‘민속음악 근대화의 선각자’ 지영희(1909~1980) 명인은 평택 포승읍 내기리의 세습무 집안에서 태어나 당대 명인들로부터 우리 음악을 두루 섭렵했다. 해금과 피리의 명인이자 지휘자·작곡가로 활동한 천부적인 예인이자 국악예술학교와 오늘날 대학 국악과의 교과과정을 짜는 데 기초를 닦고 우리나라 최초로 국악관현악단을 창단했으며 방대한 민속악 자료를 정리하는 등 독보적 업적을 남겼다.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보유자로 인간문화재가 되었으나 1974년 새로운 국악단체의 설립을 주도하다 당시 국악협회와의 갈등으로 미국 하와이로 떠나면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 취소되었다. 이후 하와이에서 국악 활동을 지속했으나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1980년 2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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