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읽기

박경순 시인·사진작가
박경순 시인·사진작가

어느덧 내가 며느리 둘이 생긴 시어머니가 되었다. 여자들끼리 모여 수다를 늘어놓을 때 결혼에 대한 여러가지 어려운 점 중에 ‘시어머니와 시집 풍습’에 대해 적응하기 어려워하며 극단적인 표현으로 ‘시’ 자가 들어간 시금치도 안 먹는다고 한다.

나는 결혼하여 30여 년을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 세월을 다 풀어놓을 수는 없지만 가장 큰 문제로 정서적인 면을 들 수 있다. 내 세대가 경험한 부모들은 당신들의 삶이 없이 가사와 가족 돌보는 데 시간을 보내며 노년을 맞이하신 분들이었다. 며느리를 들이면 마치 고생을 다 한 거 같은 분위기라고나 할까.

자아 실현이라든가 자기 계발을 위한 개념도 없이 여생을 맞이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집집마다 다르기도 하겠지만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며느리로 충분히 시집살이를 한 사람으로 앞으로 시어머니가 되면 며느리와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고루하지 않은 시엄니가 될 지에 대해 생각해 보며 고부지간이란 결국 세대 차이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가 하기 싫었던 제사 지내기와 김장하기를 과감하게 없애 버렸다.

이제 시어머니가 된 지 6년이 되어 가는 데 이 두 가지는 정말 잘한 거 같다. 두 가지로 인한 고부간 동서지간 갈등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긴 시간 시집살이 해오며
시어머니된 우리 세대,
며느리와 잘 지내는 방법
숙제처럼 고민하는 내 모습 보며 
시대 변화상 새삼스러워

그래서 그런지 며느리들이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터놓고 하는 편이다.

큰아들은 며느리와 나눠 육아와 살림을 함께 잘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거 같아 며느리에게 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는 사소한 불만(?)을 아주 애교스럽게 털어놓는다. 가고 나면 딸이 없는 내게 '이런 심정이 딸 시집 보낸 친정 엄마 기분일까' 한동안 얼떨떨해 한다. 그러다 보니, 경단녀가 된 며느리의 허전함이 어떻게 채워졌으면 하는 작은 고민도 생기게 되었다. 관심을 보이는 책을 넌지시 건네 주기도 하고 어느 분야를 잘할 수 있을지 나름 숙제처럼 안고 있었다.

마음에 있으면 꿈에도 있다 했던가.

며느리가 중학교 때까지 피아노를 쳤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점을 놓치지 않고 피아노를 배우라 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동기유발에 도움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네가 피아노로 돈을 벌려하지 말고 네 딸 결혼식 때 연주를 해 주거나 우리 부부(시부모)가 10년 후 결혼 50주년에 작은 가족 음악회를 열면 얼마나 좋겠냐며 나름 열변을 토했다. 다행히 남편은 색소폰 연주, 큰아들은 사회, 큰며느리와 작은아들은 노래 그리고 나는 시낭송을 하겠다고 했더니, 작은 며느리가 너무 감동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휴우~ 내가 너무 달렸나?

우리 세대는 흔히 말하곤 한다. 마처 세대라고. 마지막으로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이면 ‘처’음으로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세대라고.

이것이 이 시대의  문화의 변화와 흐름이 아닐까 싶다.

 

*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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