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길강묵 광주출입국·외국인관서 소장 전 주몽골참사관 겸 영사행정학박사, 평택고 32회
길강묵
광주출입국·외국인관서 소장
전 주몽골참사관 겸 영사
행정학박사, 평택고 32회

1995년 지방자치제 시행과 함께 송탄시·평택시·평택군이 통합되며 오늘날의 도농복합도시 평택이 탄생한 지 30년이 되었다. 그 전인 1981년, 송탄읍이 평택군에서 송탄시로 분리 승격되었고, 평택읍도 평택군에서 5년 늦은 1986년에 평택시로 승격되었다.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던 시절, 필자는 송탄시에서 평택군으로 매일 왕복 2시간씩 협진여객을 타고 통학하며 유학 아닌 유학생활을 했다. 당시 학교가 소재한 평택지역에 사는 벗들은 발전된 ‘시’에서 시골촌인 ‘군’으로 유학 오느냐는 장난스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송탄 지역 주민도 시로 먼저 승격되었다는 데에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다.

 

3개 시‧군 통합 30년 맞는 평택은

외형적 성장에 비해 도시 정체성

확립에 아직 어려움 많아

주민참여와 협치 통해 미래 만들어 가야

3개 시·군 통합 30주년을 앞두고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다. 통합으로 인한 양적 성장은 지역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지만, 물리적 통합이 곧 공동체의 통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시의 정체성은 단순한 행정구역 변화가 아니라, 공유된 기억과 경험, 철학적 기반 위에서 형성된다. 단기간에 외형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속에 담긴 철학과 정체성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도시는 살아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평택의 행정구역 통합 과정에서 각 지역의 문화적 차이와 경제적 불균형이 해소되지 못하며, 도시 정체성 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 지역 간 경계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남아 있으며, 송탄 등 북부 지역은 시로 먼저 승격되었음에도 개발에서 소외된 피해의식을 느끼는 듯하다. 2008년부터 조성된 고덕국제신도시는 첨단 산업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급성장했지만, 송탄이나 안중 등 구도심은 낙후와 인구 유출 문제를 겪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결하려면 거버넌스와 공동체 참여가 중요하다. 지역 주민이 도시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균형 발전을 위한 협치를 강화해야 한다. 도시사회학자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는 “도시는 유기체이며, 성장하고 변화하며 스스로를 조직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도시는 그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시민의 삶과 공동체가 상호작용하는 구조이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평택은 국제적 역할과 지역적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주한미군 기지가 있는 평택은 동북아 안보와 경제의 중요한 연결점이지만, 산업단지 개발과 환경 문제는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도전 과제다. 지속 가능성 없이는 발전도 지속될 수 없다. 평택항과 산업단지의 환경 문제 해결은 도시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후에 기회가 되면 평택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도록 하겠다.

세계 도시들은 이와 유사한 문제를 해결하며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 쇠퇴 후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재생되었고, 도쿄는 전쟁 폐허에서 철저한 도시 계획과 시민 중심 발전을 통해 세계적 도시로 성장했다. 이들 도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발휘하며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고, 이는 평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탈리아 철학자이자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열린 책’(Opera Aperta)에서 책이라는 것이 하나의 고정된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해석하고 참여하며 의미를 만들어간다고 했다. 도시는 마찬가지다.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미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미래는 경제적 성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신구도시의 조화와 연결을 통해 시민 모두가 정체성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

평택은 ‘열린 책’이다. 그러나 그 책이 어떠한 내용으로 채워질지는 행정이 아닌,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달려 있다. 시민이 주체가 되어 미래를 설계할 때, 비로소 평택은 정체성과 철학을 갖춘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과거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위한 장을 써 내려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 열린 책의 다음 장에 어떤 이야기가 남을지는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가 그 책을 어떻게 채워갈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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