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규의 문화살롱 ⑪
서울 태생, 1999년 미국 유학길 올라
케임브리지시 소재 명문 레슬리대학에서
세계적 사진작가 질 패레스에게
사진 기술과 철학, 작가로서의 방향성 배워
평택지역의 열린 공간으로 예술가들이 모여든다. 다양성과 개방성에 깃든 역사적 모순과 문화적 고유성이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승화되고 있다. 세계적 전후(戰後) 사진작가로 명성을 떨치는 윤수연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사진을 선택하다
윤수연은 서울 태생이다. 도시의 삶이라는 것이 유목민같아서 딱히 어디를 고향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울에는 최소한의 그리움과 연민이 있다. 어린시절에는 수영선수였고 대학에서는 불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도 3년쯤 했다. 그러다가 한국을 떠나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캐나다 밴쿠버로 갔다. 딱히 뭘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밴쿠버에서 몇 개월을 보내는 동안 글이나 그림보다는 어깨너머로 배운 사진이 만만해 보였다.
1999년 보따리를 싸서 미국 보스톤으로 날아갔다. 정확히 말하면 보스톤과 찰스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라는 도시였다. 케임브리지에는 하버드, MIT와 함께 명문예술대학인 레슬리대학교가 있었다. 윤수연은 대학입학을 타진했지만 9월부터 학기가 시작되는 미국에서 7월은 입시 철이 아니었다. 낙담하고 주저앉을 수만은 없어 학장과 담판했다. ‘입학을 허락하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결혼해야 한다’며 절박하게 호소했다. 절박함이 통했던지 학교 측은 특별입학을 허락했다.
입학 후 악바리처럼 사진을 공부했다. 향후 7년 동안 부모님을 뵈러 한국에 다녀가지도 않았다. 레슬리대학은 예술대학이지만 인문학적 소양을 매우 중요시했다. 윤수연도 역사 관련 수업을 7개나 수강해야만 했다. 인문적 소양은 향후 사진 작업에 크게 도움되었다. 2003년 1월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세계적 포토저널리즘 작가그룹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매그넘에는 사진작가 질 패레스(Gilles Peress)가 있었다. 질 패레스는 다큐 사진작가지만 대부분의 잡지나 저널이 요구하는 사진과 구별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작가였다. 윤수연은 1년 반 동안 질 패레스 스튜디오에 머물며 많은 것을 배웠다. 사진기술도 습득했지만 무엇보다 향후 사진작가로 나아가야 할 철학과 방향성을 갖게 되었다.
전쟁 문제에 관심 높아 탈북
이주민 관련 프로젝트와 미국
참전 군인들 이야기, 이라크 난민
이야기 담은 작품과 전시회 열어
전쟁문제에 관심 갖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다.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가 민간항공기를 하이재킹하여 미국의 심장부 국방성과 세계무역센터가 있는 쌍둥이빌딩에 자살테러를 했다. 미국인들이 경악하고 있을 때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은 이것이 ‘신의 응징’이라며 조롱했다. 미국은 전쟁을 정치·경제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여론을 조성했다.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주장은 UN의 조사를 통해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라크를 침공했다.
윤수연은 미국에서 이라크 전쟁이 이뤄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전쟁에 관한 구체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국가권력과 민족, 이념, 종교,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반복되는 전쟁, 그 전쟁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사진이 활용됐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주목했다. 국가가 홍보하고 여론을 조작하여 미화한 전쟁이라는 허상에 머물지 않고, 미디어의 한계 속에 감춰지고 왜곡된 전쟁의 본질과 전쟁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선택한 방법은 면밀한 관찰과 소통이다. 그래서 세계를 떠돌며 탈북이주자가 되었든 참전군인이나 전쟁 난민이 되었든 오랫동안 만나고 소통하며 라포를 형성하려 애썼다.
2003년부터 1년 넘게 한국의 탈북이주민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인컴플리트 저니(Incomplete Journey, 2003~2006)’가 그것이다. 미국의 동료 작가들은 윤수연 사진의 방향성과 한국으로의 귀국에 우려했지만 스승 질 패레스는 적극 지지하며 비행기 표까지 구해줬다. 한국-미국-중동으로 이어지는 7년 동안 유랑의 시작이었다.
2015년부터 평택과 인연 맺고
주한미군 관련 인터뷰와 사진
기록 남기며 다양한 프로젝트
진행 중, 2020년 주소를 평택으로
옮기고 송탄에 대안공간 샐리 오픈
2003년 12월부터 2005년 5월 사이 윤수연은 탈북이주민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에게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기 전에 우선 이야기부터 들었다. 비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탈북청소년대안학교에서 일하며 청소년들과도 소통했다. 탈북인들은 정치적 난민이기도 하지만 광의적으로는 한국전쟁에 의해 남겨진 사람들이라고 생각됐다.
탈북인 프로젝트가 끝나갈 무렵 미국 예일대학교 예술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홈커밍(Homecoming, 2006-2008)’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미국의 42개 주를 두 차례에 걸쳐 횡단하며 2차대전부터 이라크전쟁 사이에 참전했던 200여 군인과 가족들을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구술받고 사진도 찍었다. 참전군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전쟁을 경험하고 그 이후의 삶을 사는 모든 개인은 전쟁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일대학교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제출된 ‘Homecoming’으로 예일대 예술대학원 졸업생 중 1~4인에게 수여하는 앨리스 킴볼상(2008 Alice Kimball English Prize)이라는 장학금을 받았다. 예일대 대학원 재학기간에는 모두 세 차례의 전시회도 가졌다.
2008년 예일대 대학원을 졸업하며 받은 상금으로 이집트와 요르단으로 날아가 이라크 난민 관련 이야기를 ‘뉴 헤이븐, 노 헤이븐(New Haven, No Haven)’이라는 이름으로 담아냈다. 같은 해에는 박건희문화재단에서 유망한 젊은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제7회 다음 작가상’도 수상했다. 2009년에는 다음 작가상 수상자에 대한 특전으로 인사아트홀에서 ‘뉴 헤이븐, 노 헤이븐(New Haven, No Haven)’이라는 이름의 첫 한국전시회도 개최했으며, 세계적 명성의 사진계간지 <에퍼처> 여름호에도 소개되었다. 이런 윤수연에게 ‘전쟁 다큐 사진작가’가 아닌 ‘전후(戰後) 작가’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귀향, 한국으로 돌아오다
2009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하다가 2010년 영구 귀국했다. 귀국 후 1년 동안은 특별한 목적 없이 전국을 여행했다. 2013년 노마딕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동남아시아 쓰나미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물과 환경에 관한 문제에 관심 갖게 되었다. 이후 다양한 환경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작업의 대상을 확장시켰다.
2006년 탈북자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안중을 다녀갔다. 당시 친분 있던 탈북청소년의 형이 안중에 거주했었다. 2015년 서울문화재단과 용산미군기지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불가피하게 서울과 평택을 오가며 작업했다. 캠프험프리즈가 있던 팽성읍 안정리 로데오거리는 1970년대 이태원 같은 분위기였다.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하여 곳곳에 미군 렌탈하우스가 건축되고 있는 모습도 미국의 시골풍경을 연상케 하여 이채로웠다.
평택의 문화예술 발전 가능성
높게 보는 그의 상상력 속에
평택의 역사와 문화가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해
2016년에도 평택 관련 작업을 했고, 2018년 한미연합사령부 이전 당시에는 사령부 내 갤러리에서 역사 관련 이미지들을 모아 사진 전시회를 개최했다. 평택 관련 사업이 많아지면서 오가는 시간이 아깝고 모텔 생활이 지겨워져 2020년에는 아예 주소를 옮겼다. 평택은 교통이 편리하고 남한의 중심에 위치해 접근성이나 확장성이 좋았다. 역사적으로나 정서가 그의 성향이나 작품의 지향성과도 잘 맞았다. 올해는 신장동에 대안공간 샐리를 오픈했다. 작업과 전시공간도 필요했지만 그가 이끄는 불나방기획단의 집합공간, 프로젝트를 위한 거점 공간도 필요했다. 향후 3년 동안은 다른 생각 하지 않고 평택을 중심으로 작업할 생각이다.
윤수연은 미군기지 관련 기록작업에 관심이 많다. 미군기지와 관련된 사람들의 구술을 듣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단편영화, 다큐영화처럼 생활과 문화, 예술이 결합된 제3의 결과물도 만들고 싶다. 안정리 기지촌을 그곳의 또 다른 주인공인 3마리 강아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한다.
윤수연은 평택시의 문화예술 발전 가능성을 높게 본다. 우선 말과 생각이 통하고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이 잘되는 느낌이다. 평택시문화재단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 문화재단이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소통하려 애쓰는 것에도 높은 점수를 준다. 기지촌뿐 아니라 탈북이주민이나 중앙아시아 고려인들, 동남아 이주민들의 정주율이 높아지는 것도 그에게는 긍정적 요소다. 윤수연이라는 작가의 창의적 상상력 속에서 평택의 역사와 문화가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하다.
본지는 1월 24일부터 매월 넷째 주에 ‘김해규의 문화살롱’을 싣습니다.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 소장이 다양한 문화예술인을 인터뷰해 독자들의 평택 문화를 향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공감대를 이루고자 합니다.

작가네요
그녀를 발견한 소장님의 안목도
한 몫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