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연꽃
돌확 속에
연꽃 한 송이 박혀있다
어느 석공의 해탈이
저처럼 우아한 연꽃을 꺼냈을까
올려다보는 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하필이면 돌절구에,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가운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진다
얼음 같은 시간이 밀려가고
드디어 연蓮의 시간
칙칙한 먼지가 걷히고 돌확에 흠뻑
피어나는 염화미소
그 연의 미소에
한동안 마음을 빼앗긴다
돌보다 암담했던 지난날들 속에서
나의 미소를 찾기 위해 애쓰던
내 생의 물방울도 있었다
* * *
달그락 장
처음으로 내 집 마련하던 날
마음먹고 장만한 달그락 장
장인의 손길로 조각된 소나무에서
백로는 한가로이 노닐었다
안방 윗목에 눌러앉아
집안의 대소사를 지켜보며
여닫을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맞장구를 치며 박자를 놓친 적이 없다
은밀하게 넣어두던 비밀조차
아는 척 모르는 척 달그락달그락
이제는 헐거워진 관절 소리가 달그락거린다
소임 다한 결말이 보인다
버거웠던 생을 분해하는데
홈으로 이어져 못 자국 하나 없는 장롱
형체마저 납작해져
백로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세월 밖으로 밀려나는 것들은 다 저런 모양일까
분리수거장으로 옮겨진 나무 판때기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아직은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최경순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 사무국장
경기문학 공로상, 황금찬문학상 대상 외 다수 수상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