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갈아 넣는 현실에서 농촌의 미래는 없다

 

 

풍년인데도 시름 깊어
부부가 6만평 벼농사로
3000만원 버는 수준

 

가을 들판이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올해에도 풍년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그런데 농민들은 쌀값이 폭락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정부가 대책을 세운다고 하지만 농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에 부족해 보인다.

매년 쌀값을 놓고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보니 농민들의 시름과 어려움을 다시 확인하기 조심스럽다. 하소연이라도 듣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생각에 현덕면 신왕2리에서 35년간 벼농사를 지어온 이재승(64) 신왕2리 이장을 만나보았다.

 

현덕면에서 비교적 젊은 이장이라고 하던데.

3년 전부터 신왕2리 이장을 맡고 있다. 농촌 평균 연령이 70대를 훌쩍 넘으니 60대는 젊은 축에 속한다. 벼농사를 지으며 평택시쌀전업농연합회에 가입해 현재 감사를 맡고 있다.

신왕2리에 산 지는 35년 됐다. 1989년 경기도 포천에서 이주해 정미소를 운영했다. 일하다 허리를 다쳐 수술하는 바람에 그만두게 됐다. 마침 서해대교 건설이 시작되던 때여서 공사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공사장에서 일하며 받은 돈을 모아 콤바인을 구매해 가을에는 주중에 공사장에서 일하고 주말에 이웃 논에서 벼를 베 주고 품삯을 받아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그렇게 8년간 모은 돈에 농협에서 받은 대출을 보태 오성강변 근처에 논 800평을 샀다. 그 논이 평택시가 자전거도로를 만들 때 수용된 덕분에 보상금으로 논 2000평을 구매해 재배 면적을 3000평으로 늘렸다. 현재 임차 논 6만여 평을 포함해 6만5000평이 논을 경작하고 있다.

 

8년 동안 돈을 모아 다른 일에 도전할 수 있었을텐데. 논을 사 벼농사를 짓게 된 이유가 있는지.

아버지가 포천에서 밭농사를 지으셨다. 어릴 때부터 일손을 돕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사를 짓겠다고 생각했다. 20대에 다른 일을 권유받았는데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고 가고 싶지 않더라. 벼농사를 선택한 이유는 밭농사가 얼마나 힘든지를 너무 잘 알아서다. 농사지을 마음이 있고 노력하면 큰돈은 못 벌어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마침 살고 있는 평택이 벼농사 짓기에 좋은 곳이었다. 농사는 물이 가장 중요한데 평택호에서 농업용수를 공급받을 수 있고 간척지라 토질도 좋았다.

 

기후위기로 식량 생산이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최소한 주식인 쌀만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추수를 앞둔 평택 농민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올여름에 집중호우·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거의 없어 벼 이삭이 실하게 찼다. 추수 전 숙성 작업을 잘 마무리하면 예년보다 많은 수확을 예상한다. 수확량이 늘면 뭐 하나, 쌀값이 끝없이 떨어지는데. 비료·농약·농기계 등 각종 농자재 가격은 해마다 오르는데 쌀값이 유지는커녕 폭락하니 한숨만 나온다.

 

현재 쌀값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쌀 한 가마에 17만5000원 정도 한다. 지난해 20만원대였으니 10%넘게 하락했다. 10월에 중생종 품종을 본격적으로 수확하면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10년 전 20년 전 쌀값이 얼마인지 기억하는가. 2004년 16만6000원, 2014년 16만9000원이었다. 현재 쌀값이 17만5000원이니 채 1만원도 오르지 않았다. 2000년에 2500원 하던 짜장면 값이 지금 6000~7000원으로 두 배 넘게 오른 것과 비교해보라. 쌀농사에 필요한 자재값, 인건비가 몇 배 올랐다. 원가 상승분을 따지면 쌀값은 20년 전이 아니라 그 이전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또 70% 이상의 논이 임차농지임을 고려해야 한다. 논 주인에게 토지 임차료인 도지를 주고 나면 손해 보는 농사가 될 것이 뻔하다. 답답한 마음에 올해 농사지을 때 쓴 비용을 따져봤다. 1ha 3000평에서 60가마니를 수확한다고 할 때 농지임차료 20가마니를 빼면 40섬이 농민 몫이다. 1가마니에 16만원으로 치면 648만원이다. 여기에서 농기계 사용료 230만원, 묘판 비용 98만원, 비료·농약 투입비 71만8000원, 농번기 인건비 90만원 등을 빼고 보니 169만8000원이 남더라. 나와 집사람 인건비는 넣지도 않았다. 임차한 논이 20ha(6만평)니 올해 3396만원이 남는다. 두 사람이 농사지어 최저임금(시간당 1만30원, 월 209시간 기준 연봉 약 2515만원)에도 못 미치는 수익을 내는 셈이다. 아들 둘을 장가보내고 큰돈 들어갈 일은 없지만 우리 부부가 생활하기에도 빠듯하다. 이렇게 농민을 갈아 넣어 쌀을 생산하면 농촌에 미래가 없다. 부모가 수만평 수십만평의 대농이 아니라면 젊은이가 농사를 자신의 업으로 선택할 수 있겠는가.

 

지속가능한 생산 위해
손해보지 않게 해줘야
적정 가격을 보장해주고
재고물량의 시장격리와
양곡관리법 개정 필요

최근 쌀 소비가 줄면서 남는 쌀이 많다고 들었다.

쌀 소비가 왜 줄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과거에는 밥과 한두 가지 반찬으로 식사했다. 쌀도 귀해 보리 등과 섞어 혼식을 했다. 요즘에 소득이 높아지면서 고기도 먹고 생선도 먹는다. 먹거리가 풍부해진만큼 밥만 먹지 않게 돼 쌀 소비가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이 밥 안 먹고 살 수 있는가. 예전보다 적게 먹어도 쌀은 우리에게 여전히 핵심 먹거리다.

또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15년부터 쌀시장이 전면 개방돼 값싼 수입쌀이 매년 들어오고 있다. 쌀 소비는 줄고 수입쌀은 시중에 풀리고… 그 결과 시중에 쌀이 남아도는 상황이 됐다. 정부가 근본 대책을 세우기보다 손 놓고 있어 문제를 더 키우고 있다.

 

쌀값 폭락을 막을 대책은 어떤 것이 있다고 보는지.

긴 안목으로 봤으면 좋겠다. 언론 보도를 보니 기후위기로 식량 생산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32%이며 곡물 자급률은 29.9%밖에 되지 않는다. 최소한 주식인 쌀만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식량안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장경제 논리로 접근해선 안 된다. 식량안보의 핵심 보루인 쌀의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해서는 농민들이 손해는 보지 않게 해줬으면 한다. 정부는 농민들이 계속 쌀농사를 지을 수 있게 적정 가격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연간 소비되는 쌀을 제외한 재고 물량을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격리해 적정 가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도 시급하다. 개정안은 쌀 생산량이 평년보다 3~5% 이상 늘어나거나, 쌀값이 5~8% 넘게 떨어지면 정부가 곧바로 시장격리 조처에 나서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정부가 9월 중에 쌀 수확기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하는데 쌀값이 내릴 대로 내린 상황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추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선제적 쌀값 하락 방지 대책을 내놓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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