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동체를 꿈꾼다.

 

직장잃고 오갈데 없어진

네팔 노동자들에게

노후위해 마련한 집 제공

청북읍 율북리에 가면 마당이 넓은 집이 하나 있다. 원래 있던 본채에 별채를 덧댄 구조의 가옥 주변을 오가는 사람이 여럿인데 모두 네팔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다. 이들은 마당에서 거실에서 방에서 편하게 쉬기도 하고 거실에서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하기도 한다. 식당에는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배어난다. 알고 보니 이곳은 평택외국인힐링센터였다. 외국인노동자들이 집처럼 편하게 지냈던 것도 이해된다. 실제로 황창용·박연순 부부가 노후를 보내려고 마련한 집을 센터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2015년 센터의 문을 연 후 7년간 작은 것일지라도 함께 나누며 오병이어를 실천해온 평택외국인힐링센터 황창용 대표와 박연순 센터장을 만나보았다.

 

평택외국인노동자힐링센터는 어떻게 시작됐는지.

박연순 네팔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작은 쉼터다. 현재 네팔 친구 10여 명이 우리 부부와 함께하며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이곳은 2015년 7월 문을 열었다. 평택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근무하다 2015년 퇴직했는데 가깝게 지내왔던 네팔 친구들이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오갈데가 없다는 고민을 상담해왔다. 오랫동안 교류해온 네팔 친구들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그때가 노후를 위해 마련한 청북읍 율북리의 농가가 어느 정도 정리가 마무리된 상태였다. 전에 사시던 할머니의 살림살이도 남아 있고 해서 네팔 친구들이 머무를 쉼터로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해 율북리 농가를 단장해 그들을 위한 쉼터로 제공했다.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작은 것 나눠 7년간 운영

노후를 위해 마련한 집을 쉼터로 내놓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황창용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노후를 보내는 것은 아내의 오랜 꿈이었다. 그런 아내가 노후를 위해 마련한 집을 외국인들을 위한 쉼터로 만들고 싶다고 소망했다. 예전에 결혼하고 적금으로 모은 1000만원을 동생에게 주려 했을 때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동의해줬다. 그랬던 아내가 내린 결정을 지지하고 돕는 것이 제 역할이다. 이후 네팔 친구들이 불편함 없이 살 수 있게 집 구조를 바꾸고 수리했고 지금도 어디가 고장 나면 직접 수리한다.

 

박연순 평택외국인복지센터에 다닐 때에도 월급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외국인노동자와 결혼이주민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에 골몰했다. 결혼 이주민들한테는 친정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언니 누나 같은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몸은 힘들어도 참 재미있게 살았다. 네팔 친구들에게 집을 내주고 평택시내에 있는 집에서 왔다 갔다 하는 생활도 즐겁다.

 

센터를 운영하려면 식비뿐 아니라 겨울에 난방비도 들고 수도세도 내야 하지 않나.

박연순 그동안 자비로 충당했다. 다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받은 급여를 운영비로 썼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다만 연말에 퇴직을 앞두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조금 걱정이 든다.

 

황창용 아내와 신앙으로 만나 10년 넘게 평택우체국 앞에서 기독교 서적을 파는 기독서점을 운영했다. 그러다 아내의 권유로 뒤늦게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제가 공부를 마치고 아내도 사회복지를 전공해 부부가 사회복지사로 활동하게 됐다. 누군가를 돕고 봉사하는 것이 좋고 보람 있다. 성경을 보면 예수가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수천 명을 먹였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 나오지 않나. 그동안 누구에게도 도와달라 요청해본 적 없지만 작은 것이라도 나누다 보면 센터가 운영된다. 최근에는 알음알음 이곳을 알게 된 분들이 조용히 도움을 주고 있어 큰 힘이 된다.

 

 

센터를 운영하며 네팔에도 여러 번 방문했다고 들었다.

박연순 지금까지 8번 방문했다. 네팔은 에베레스트 산맥에 위치해 있어 높은 낭떠러지 위로 좁은 길을 따라 이동해야 한다. 처음에는 진짜 무서웠지만 잠시였다.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무서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이동하는 7시간 동안 한숨 안 자고 신기해하며 창밖만 내다본 기억이 난다. 방문할 때마다 센터에 머물렀던 친구들이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줘 체류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었다. 그렇게 아낀 비용으로 네팔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한다.

현재 센터를 이용하는 네팔 친구들이 네팔 룸비니에 공중화장실을 조성하는 비용을 모으고 있다. 네팔의 화장실은 매우 열악하다. 부처의 고향으로 많은 순례객이 찾는 룸비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네팔 친구들이 1만원씩 내서 룸비니에 화장실을 만들자고 뜻을 모아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 처음에는 300만원이던 조성비용이 500만원으로 늘었다. 그래도 내년쯤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황창용 우리나라의 물가가 네팔보다 10배 정도 높다. 한국의 한 달 월급이 네팔에서는 한 해 급여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일한 네팔 친구들은 네팔에서 직장을 다니기 어려워한다. 이런 친구들이 한국에 계속 머물 방법이나 네팔에서 한국과 연계해 사업을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네팔에 방문할 때마다 센터에 머물렀던 네팔 친구들이 한국에서 경험을 살려 무엇을 할지를 조언하고 현재 네크워크를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센터 머물렀던 노동자 위해

네팔 네크워크 구축 노력중

우리 사회에 외국인노동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있다. 우리 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황창용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국가이다 보니 폐쇄적인 면이 강해 나와 다른 것을 ‘틀렸다’고 할 때가 있다. 이런 사고에서 벗어나 외국인노동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연순 외국인노동자들은 우리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가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잘못된 시선이 있어 안타깝다. 이 친구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고된 일들을 도맡고 있으며 세금도 꼬박꼬박 낸다. 그렇게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형제자매를 학교에 보내고 결혼도 시킨다. 외국인힐링센터에 머무르는 네팔 친구들이 우리나라의 한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인 권리, 기초적인 보장을 받을 수 있게 돕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도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봐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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