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은 미군기지가 두 곳이나 있다. 미군기지 면적은 평택 주거면적만큼이나 넓게 차지하고 있고 평택 인구의 9.3%가 미군이거나 미군속, 그 가족이다. 그러다 보니 평택에서는 미군기지 관련한 이슈가 끊이지 않는게 현실이다. 주한미군 알파탄약고 이전 문제도 그렇고 고도제한 완화 요구도 그 중에 하나다. 하지만 이런 이슈들이 지자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에서 미국 관련한 문제들은 정책과 제도가 아니라 미국의 태도와 선의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선의에만 의존한 문제들은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지 다시 발생될 수 있을 뿐만아니라 돌발 변수에 따라 다른 문제들을 수반하기 때문에 미군기지 주둔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피해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8월 피해주민 지원조례 제정

미군 기지 주변지역 주민들은 소음이나 훈련, 기지 시설물 등에 따른 피해와 권리 침해를 받아 왔지만 한국 정부는 그 피해나 권리 구제를 위한 지원법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1990년대 말 미군 주둔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의 공동 작업으로 ‘미군 공여지역 지원 및 주민권익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하여 2001년 41명의 국회의원들이 입법 발의하였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의 소극적 태도로 국회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그리고 2016년 12월 미군주둔지역 지방정부 최초로 ‘경기도 주한미군 주둔지역 등 피해방지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발의되었고 2023년 8월은 ‘평택시 주한미군 주둔 등으로 인한 피해지역 및 피해주민 지원 조례'가 발의되었다. 이것은 미군의 재량에만 맡겼던 문제를 이제는 지자체 차원의 실질적인 제도적, 정책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변화가 조례에 담겨있다고 하겠다.

 

조례 근거로 ‘실태파악’ 가능해

‘평택시 주한미군 주둔 등으로 인한 피해지역 및 피해주민 지원 조례'에는 두 가지 주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첫번째는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평택시 주한미군 피해지원위원회’가 구성된다는 점이다. 70여년동안 미군기지 주변지역 주민의 목소리는 국가안보에 가려, 주변화되거나 가짜뉴스화되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목숨을 잃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사고가 발생할 때만 공론화되었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삶의 질을 진단하거나 어떠한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공론장 자체가 없었다. ‘피해지원위원회’ 구성으로 그나마 기지주변 주민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두번째는 미군주둔으로 발생하는 사건사고 및 다양한 문제들의 ‘실태조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알파 탄약고 이전 문제나 평택시 38%가 고도제한으로 묶여있는 문제는 오랫동안 평택 주민들을 불편하게 만든 사안이다. 하지만 평택시는 이로 인해 발생한 주민피해나 불편 사항, 미군과의 갈등, 불신 등의 문제를 지자체 차원에서 조사하고 기록하고 정리해 두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미군기지로 인한 문제에 대해 지자체 차원의 법적 권한이 없다 보니 실태파악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 제기를 위한 근거자료가 없고 모든 문제를 미군의 태도나 선의에만 의존하는 악순환이 되었다. 또 실질적인 문제해결은 더더욱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조례를 근거로 ‘실태파악’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조례가 발의되기 전에도 평택시는 미군기지 군소음에 관련해 좋은 사례를 가지고 있다. 미군기지 주변 지역의 소음실태 조사를 위해 2008년부터 소음과 진동 측정기를 설치하고 그 결과를 시청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지형적 특성과 상시 측정망에 대한 기록은 피해 입증과 법제도 개선을 위한 유용한 자료로 사용되었다. 미군주둔으로 발생하는 주민피해와 민원 또한 군소음 사례처럼 정확하고 과학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평택시의 현안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유용하게 활용할 것이다. .

 

미군과 주민 간 문제 있는 그대로 측정

가까운 오키나와의 사례를 살펴보자. 오키나와현은 미군기지를 둘러싼 여러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본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측의 재량(선의와 태도)에 맡기는 형태의 운용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키나와현은 미군기지 관련한 문제를 대응하는데 있어서 ‘실태조사’를 효과적으로 운용하였다. 미군기지 문제 전담 부서(기지대책과·기지연락과·기지정책과 등)를 구성하여 주민들의 일상적인 피해와 민원을 수집, 조사하여 공개하는 것을 주 업무로 삼았다. 상담센터 개설, 상시 소음측정, 미군 관련 전체 현황 및 오염유발시설의 위치 공개, 관련 법규정에 대한 해설, 정기적인 미군 영향/피해에 대한 설문조사, 환경 및 안전사고 대응, 직접 소송 등을 ‘실태조사’ 자료를 근거로 운영하고 있다. 오키나와 현청에 근무하는 약 3000명의 공무원 중 30여 명이 미군 관련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전담 부서가 실시한 ‘실태조사’ 데이터는 종합, 정리되어 미국과 일본 양 정부에 오키나와 현의 피해와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오키나와 현청 및 기초 지자체의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문서와 발언 일체를 공개하여 시민사회의 불안과 민원을 해소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오키나와 사례를 보듯 미군과 지역주민 간 문제를 있는 그대로 측정하는 ‘실태조사’는 지자체 역할의 시작이다. 주민의 일상적인 피해와 민원 등을 수집, 조사하고 기록하는 것은 미군 주둔으로 인한 다양한 문제를 진단하고 어떠한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파악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실질적인 현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 어떠한 영역에 어느 정도의 관리가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군주둔으로 발생하는 주민피해와 민원, 갈등의 정확한 ‘실태조사’는 평택 현안의 수준을 파악하고 문제를 진단하며, 원인 파악과 처방을 위한 적절한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

혹자는 미군기지 관련한 ‘실태조사’는 대상 피해 주민의 재정적 지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 말한다. 피해주민에 대한 재정지원은 국가사무에 속한다. 실태를 파악하고 정리하고 기록하는 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근거자료를 마련하는 것이다. 실태조사는 주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지 국가사무를 대신하자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기지 주둔으로 인한 지역사회의 고충과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실태조사’로 시작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2024년 평택시의 정책적 노력 기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렇기에 무엇인가를 보는 행위는 다양한 추측과 오해를 동반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주민의 대리자이자 주민 보호를 위한 지자체 역할은 현안 문제를 보는 우리의 시선을 좀 더 객관화하여 기록하고 정리하여 분석하여 통계자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지역사회 구성원들간의 추측과 오해, 갈등을 불식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2024년에는 미군기지 관련해 평택시의 정책적 노력을 기대해본다.

 

임윤경 평택평화센터 대표
임윤경 평택평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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