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양곡관리법 개정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력화됐지만 올해에도 여전히 공공비축미 수매가 한창이다. 공공비축미는 정부가 농민으로부터 시장가격에 매입해 비축하는 쌀을 말한다. 평택시는 10월 4일 산물벼(추수 후 건조하지 않고 바로 출하하는 벼) 매입을 시작했고 11월 말까지 건조한 벼를 포함해 13만8183포, 5527톤의 공공비축미 매입을 마친다. 800kg 자루로 6900개가 넘는 많은 양이다.

공공비축미는 모든 벼를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농민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는 지자체별로 2가지 품종을 선택하게 되어 있는데 우리 평택은 삼광, 추청 두 품종만 가능하다. 또한 제한된 수량만 수매하다 보니 신청하는 모든 농민이 하는 것이 아니고 재배면적에 비례해서 지자체별로 일정한 제한을 두어 정해진 양만큼 그리고 조건에 부합하는 농민만 공공비축미 수매에 참여할 수 있다. 평택 농민들의 입장으로 보면 손은 많이 가지만 일반 정미소에 벼를 파는 것보다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어 선호하는 출하 방식이다.

쌀은 모든 국민이 먹는 주식이기에 정부는 쌀의 확보와 가격조절을 목적으로 쌀의 유통을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농민에게 직접 신곡을 수매한다. 양곡관리법에 의거해 시행되는 공공비축미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과거 1950년부터 2005년까지는 추곡수매제라고 불렀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은 공공비축미 수매보다 추곡수매로 이해한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는 공공비축미 수매제도로 바뀌면서 농업정책의 변화도 진행됐다. 자유무역 협정과 국제적인 농업보조금 삭감요구로 추곡수매제가 폐지되고 2005년부터 2019년까지는 쌀 생산 농민의 소득보전을 위해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 제도를 시행했다. 고정직불금은 면적에 따라 일정 금액을 직접 지급하는 제도이고 변동직불금 제도는 정부가 5년마다 정한 쌀 목표가격에 수확기 쌀값을 뺀 금액의 85%를 정부가 농가에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문제가 제기된 것은 바로 변동형직불제였다. 보조금 혜택의 대상이 주로 쌀 생산 농가였고 대농에 유리한 제도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쌀값이 큰폭으로 떨어지면 농민에게 변동형직불제로 지급되는 금액이 보조금 상한을 넘게 되면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정부는 쌀의 초과 공급이 발생하고 재고가 늘어 쌀값 하락의 원인이 된다고 판단해 지금의 공익형 직불제를 도입하면서 휴경을 유도하고 대체작물을 심게 하도록 정책을 바꿨다.

지금의 공공비축미 수매제도와 공익형 직불제는 2020년부터 시행됐다. 농민 입장에서는 정부와 국회에서 생산비가 보장되는 목표가격을 정해놓은 양곡정책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농민의 피해를 최소화해 주는 안전장치라 생각했지만 정부는 그에 대한 대책을 완전히 세우지 못한 채 공익형직불제를 시행하게 된다. 피해는 바로 나타났고 2021년 쌀값의 하락으로 많은 농민과 농협에서 손실을 보게 되었다. 농민들은 그에 대한 저항으로 양곡관리법에 대한 전면 개정을 요구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었다. 급작스러운 쌀값 하락으로 인한 농민보호 정책은 사라지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8일 전국농민회총연맹 평택농민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양곡관리법을 개정하고 쌀값 폭락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11월 8일 전국농민회총연맹 평택농민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양곡관리법을 개정하고 쌀값 폭락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한다.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해 연도의 기상 상황에 따라 풍년이 되기도 하고 흉년이 되기도 한다.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도 많이 하지만 풍년이 되면 쌀값 하락으로 고통받고 흉년은 흉년대로 생산량이 부족해 농민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 현재의 공공비축미 수매제도는 아직 이런 문제점을 완벽히 보완하지 못한다. 특히 쌀가격이 하락할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 부족하다. 정부는 창고에 있는 재고미를 시장에 유통하지 않으면서 가격을 조절하려 하고 논에 타 작물을 심게 해 공급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2023년 쌀 가격을 20만원대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0만원 자체가 농민들이 요구하는, 생산비가 보장되는 가격에 미치지 못하고 심지어 이미 현장에서는 그 이하로 거래가 되고 있다. 또한 재고미가 언젠가는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전망으로 쌀가격은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비축미 수매가 한창인데도 쌀값이 하락한다는 것은 현재의 제도가 쌀값 하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을 방증한다. 쌀값이 오르면 가격을 떨어뜨리는 역할은 잘하면서 그 반대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정부의 양곡정책에 따라 쌀생산 농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현실에서 가격하락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내년 총선이 끝나면 쌀 정책은 더 후퇴할 수 있다. 그래서 농민들이 양곡관리법 개정을 강력히 요구한 것이다.

지금의 공공비축미 제도는 생산비가 보장되는 가격책정이 아니라 물가조절용 수단으로만 이용되고 있다. 이전의 추곡수매 제도는 국회가 정부에서 제출한 생산비를 의결해서 최소한의 농민소득을 보장해 주는 방식이었다. 2005년부터 시작된 초기의 공공비축미 제도에서도 정부가 제시한 목표가격을 국회에서 동의해 주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가격을 보장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의 공공비축미 수매 제도는 10월부터 12월까지 시장가격의 평균가격으로 정산하기 때문에 풍년이 들어 가격이 폭락했을 때 최소한의 생산비를 보장받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경기도의 경우 공공비축미와 일반 시장의 가격이 차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여주나 이천의 경우는 오히려 시중 가격이 더 좋아 공공비축미에 응하지 않는다.

모든 지역에서 공공비축미 수매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정부는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영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미곡처리장(RPC)에서 산물벼 도정을 하지 않고 정부양곡 도정공장을 이용하면서 큰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도 시급하다. 품종의 문제, 물량 배정이 늦어져서 발생하는 농민들의 불편함까지 빠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추수가 끝난 농촌은 김장과 더불어 공공비축미 수매를 마무리해야 1년 농사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공공비축미가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의 농촌은 아직도 답답하다. 정부의 수확기 20만원 유지는 현장에서 무너지고 있고 제도적으로 생산비를 보장해야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도 무산되면서 앞날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년 40만톤의 구곡을 사료용으로 전환하고 매입한 산물벼를 시중에 내놓지 않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지만 그것도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모든 물가가 오르고 인건비를 비롯한 생산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데 농산물은 물가안정의 희생양이 되었다. 공공비축미는 매년 진행되지만 가격하락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운영상에도 개선해야 할 지점들이 있지만 아직 개선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김장이 끝나가는 평택의 농촌 마을은 아직도 가을걷이를 끝내지 않은 것 같다. 혹시 내년에 풍년이 들면 그래서 쌀 가격이 폭락하면 심지어 팔지도 못하면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맘 편히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임흥락평택농민회장
임흥락평택농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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