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고

임소정 평생학습센터 주무관
임소정 평생학습센터 주무관

제13회 평택박물관 포럼의 강사로 전 충남역사박물관장인 오석민 (사)지역문화연구소장이 왔다. 그는 충남역사박물관 개장시부터 박물관과 함께 한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오석민 소장은 당시에 가졌던 고민 한꾸러미를 풀어놓았다.

오석민 소장은 우연히 파평윤씨의 종손이었던 윤완식 선생의 유물을 기탁받으면서, 박물관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박물관에 기증된 물건 대다수가 정리 등의 이유로 전시보다는 수장고에 보관되는 기간이 길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수장고에 장기간 보관하는 것이 기증자의 뜻에 부합하는 것인가. 또 전시된다고 하더라도 당시 받은 유물 중에 상당수 포함된 고서들이 과연 관람객의 흥미를 끌 수 있을 것인가. 대부분 한자로 쓰여 있는데다가 설사 한글이 있더라도 17세기의 고어로 쓰였을 책들이 과연 현대인 관람객의 흥미를 끌 수 있을까.

무엇보다 오석민 소장이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는 이 유물이 있던 장소였다. 고서가 탄생되고, 그 저자와 저자의 후손들이 살았고,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장소였다. 고서와 분리시킨 채 이대로 두어도 되는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기증·기탁자에게 어떻게 도움-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긴 고민 끝에 오석민 소장이 내린 해결책은 ‘고택 음악회’였다. 출연료는 주기 어렵지만 17세기 유학자의 숨결이 살아있는 역사적인 장소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말에 피아니스트 임동창은 선뜻 응했고, 조선 숙종때 유학자 윤증이 지은 명재고택 앞마당에서 2010년 고택음악회가 개최되었다. 200명에서 300명 모일까 말까 한 곳이었으나 그날 방문객의 숫자는 7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후 같은 취지로 이어진 돈암서원에서의 음악회 역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때 의미있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는데, 바로 명재 윤증선생의 후손인 윤완식 선생의 참석이었다. 돈암서원은 송시열을 비롯한 노론 인사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성리학을 두고 서로의 관점 차이로 인해 치열하게 싸웠던 두 영수의 후손들의 만남. 수백년전 서로의 생사와 철학을 걸고 날선 필담을 주고 받았던 둘의 후손이 세월의 간격을 넘어 한 장소에서 만나 화해하게 된 것이다. 그 긴 세월동안 쌓인 앙금이 한순간에 사라지겠느냐만은 또 이런 우연인 듯 필연인 듯한 사건을 계기로 얄궂었던 운명의 실타래가 풀리기도 하는 것이다.

음악회를 시작으로 오석민 소장은 명재고택을 중심으로 한 체험형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호응도 높았다고 한다. 특히 유교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와 관심을 많이 끌어올렸다고 한다. 멀리서 사극이나 고서에서 보아왔던 선비들의 생활상을 직접 피부로 체험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도 역사의 일부가 되었음을 느꼈고 이로 인해 관심과 이해가 심화된 것이다.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오석민 소장은 단 한순간도 이 모든 행사의 주인공이자 서사의 주체는 그 장소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명재고택에서도 그러했고 돈암서원에서도 그러했다고 한다. 행사 사회자에게도 주인공은 명재고택 혹은 돈암서원이라는 장소라는 사실을 주지시켰다고 한다. 실제로도 모든 행사는 명재고택에 맞게 진행되었다. 윤증이 어릴 때 지은 시 ‘거미를 읊다(詠蜘蟵)’를 트로트로 변주하여 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지역의 문화적·공간적 특색을 살린 것이다.

그러나 오석민 소장의 말에 따르면 결론적으로 박물관의 사업으로 이끄는 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 이겠으나 가장 큰 이유로는 박물관 사업 관련자들에게 공감대를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체험형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긴하겠지만 박물관의 역할 중 하나인 연기기관으로서의 목적에서 멀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많았다고 한다. 더불어 갑자기 닥친 예산삭감 등 재정적인 이유까지.

결국 하나의 독립적인 사업으로 박물관과 멀어졌지만 박물관의 역할에 대한 오석민 소장의 고민과 노력은 의의가 높다.

 

충남 논산 명재고택 음악회처럼
박물관은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과거와 현재 이어주며
새로운 지평 열어가는
살아 숨쉬는 공간 돼야

영국의 외교관이자 역사학자였던, E.H. 카(E.H. Carr)는 역사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 적이 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명재고택을 필두로 시작된 음악회가 지역축제의 장이 되고, 오랜 과거의 갈등과 원한을 털어버리는 화합의 장이 되기도 한다. 역사적 장소가 그저 역사서나 오래된 고서적으로 완결된 것이 아닌, 끝없이 이어지는 역사의 연속이 된 것이다.

오석민 소장은 사업의 실패와 성공에 대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평택박물관에게 하나의 장을 제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완결된 사건의 나열이 아닌 또 다른 사건의 지평을 여는 장소여야 한다고. 즉, 현재와 과거의 대화를 이어주는 역사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평택박물관 역시 완결된 역사가 아닌 살아숨쉬는 역사로서,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대화의 장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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