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배두순 시인
폭우
하늘이 뚫렸는지 빗물이 세차다
굵은 물줄기는 양철지붕이나 슬레이트 지붕을
드럼 치듯 빠른 템포로 두드리며 신명까지 더한다
겹겹이 밀려온 물의 군단들은 언덕을 뭉개고
나무들을 쓰러뜨리고 외딴집을 휩쓴다
겹겹 층층의 물이 도시를 섭렵하자
지하 셋방과 지하도는 물의 지옥에 든다
지하차도에 들어선 자동차는 흙탕물에 처박히거나
종이배처럼 둥둥 뜨다 가라앉고
사람들은 차 안팎에서 목숨줄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출근길의 뽀뽀가 식기도 전의 일이다
오래된 건물에서는 비 맞은 생쥐들의 몰골이
허름한 추억처럼 기신기신 빠져나온다
사라호 태풍을 겪던 유년에
물의 침략이 불의 침략보다 더 허망하다는 말을
어른들께 들은 적이 있다
물은 천 개의 얼굴을 가진 게 분명하다
시루떡처럼 반듯반듯하던 논들은
하나가 되어 수십만 평의 물바다를 이루었다
대책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인간 세상도 저처럼 평평하고 고르게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든다
탕탕평평하다는 말을 곱씹어본다
한국문인협회 국제문학교류위원
평택문인협회 수필분과 위원장.
시집 <황금송아지> 외 다수
천강문학상 외 다수 수상
세종도서 2회 선정
평택시민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강사
평택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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