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규 소장평택인문연구소
김해규 소장
평택인문연구소

2023년 평택시 인구는 60만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2035년 경이면 100만 특례시로 성장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구는 힘이다. 도시 규모의 확장과 함께 도시의 위상과 예산, 운영도 달라진다. 하지만 도시팽창이 반드시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선진국 사례에서 볼 수 있었던 도시문제, 노동문제, 계층 간 갈등, 정체성 문제, 복지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함께 나타날 것이다.

역사학도로 평택시 인구증가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정체성(正體性)’ 문제다. 평택시는 지역 정체성이 분명했던 지역은 아니다. 도(道)의 경계에 위치하여 행정구역의 변화가 심했고 지역별 문화도 상이했다. 수백 년 동안 간척으로 경제기반이 확대되면서 지역적 정체성과 자긍심, 문화적 소양이 부족했던 사람들이 인구증가를 주도했다. 근대 이후 평택역전과 서정리역전에 거주했던 ‘근대인’들의 정체성도 크게 다를 바 없었으며, 한국전쟁 뒤 미군기지촌과 함께 증가한 인구도 매한가지였다.

도시가 발전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문학의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지역사나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문화재보호나 이전문제에 대한 지역적 갈등도 심해진다. ‘문화’, ‘문화재’, ‘지역 인물’과 관련된 콘텐츠나 주장이 반향을 얻고 있다. 평택시문화재단에서는 지역사를 소재로 뮤지컬을 계획하고 지역문화와 관련된 축제 발굴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평택박물관 건립은 가시적 단계로까지 진척되었다. 지역인물과 관련된 역사관, 미군기지 역사관 건립도 추진된다. 생활사박물관, 고고학박물관 같은 전문박물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객관적이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사실처럼 주장하거나 객관적 검증
이나 공감 없이 사업이 추진되기도

 

평택을 품격있는 도시로 성장시키려면
지역사와 지역 정체성 교육 강화해야  

그런데 지역적 관심만큼 지역사에 대한 이해 수준은 그리 높아진 것 같지는 않다. 욕망과 탐욕에 사로잡혀 객관적이지 않는 역사적 사실을 사실처럼 주장하거나 부풀려 주장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현재의 필요성과 욕망을 위해 평택지역과 관련성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을 지역 인물로 둔갑시키기도 하고, 다른 인물은 학계의 공감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한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박문수의 탄생지에 대한 객관적 검증도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평택항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대진(大津)’의 위치도 포승읍 만호리가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성천을 ‘평택강’으로 부르자는 퍼포먼스, ‘평택호’, ‘평택호방조제’처럼 학계의 검증과 자치단체 간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지명을 바꿔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고대제국 아시리아가 짧은 기간에 멸망한 것은 다른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용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페르시아가 수백 년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관용정책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20세기로 들어와 세계 최강 국가로 성장했지만 짧은 역사와 모호한 정체성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평택시는 미국과 비슷한 역사적 경험과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다양한 인종과 계층이 모여들다 보니 역사·문화적 정체성이 부족한 것도 비슷하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졌을 때 해체될 가능성이 크다. 평택시도 자기 정체성을 세우지 못하고 물질적 발전에만 몰두한다면 미국과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많다.

평택시가 지속가능한 도시, 토대가 튼튼한 품격 있는 도시로 성장하려면 인문학이 발전해야 한다. 자치단체가 인문학 발전을 위한 철학과 비전을 세우고 단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사에 대한 객관적 연구와 연구성과로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갖고 모여든 시민들에게 ‘지역사 교육, 지역 정체성 교육’을 시켜야 한다. 분쟁을 통해 쟁취하려는 이기적 생각에서 탈피하여 이웃의 자치단체와 관용하고 상생하는 품격도 갖춰야 한다. 모든 것은 노력과 대가 없이 이뤄지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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