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6주년 특집기획 주민이 제안하는 조례 제·개정 운동의 의미
주한미군 주민피해방지 조례
평택에서의 출발과 현재까지
진행상황을 중심으로
선거 때 투표하는 것 정도로는 시민들이 지방자치에 관심을 가질 수도 없고, 정치적으로 교육되거나 경험을 쌓을 수도 없습니다. 어떤 시민이 일상생활 속에서 작은 실천을 하고 있는 경우에도, 자기경험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사회 전반이나 지방행정, 지방정치에 대한 관심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지방자치가 정말 민주주의가 되려면 주민들의 의식을 발전시키고, 정치적 경험을 쌓게 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조례 제.개정 운동’입니다. 주민들 스스로가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필요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스스로의 의사를 모아 조례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조례를 발의하기 위해 지방자치법상의 조례 제·개정 청구제도를 이용하여 서명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시민들이 제안한 조례가 의회에 안건으로 상정된 이후에도 조례의 통과를 위한 운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시민들은 지방행정이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주민참여가 활성화됩니다. 오늘 여기서는 현재 진행 중에 있는 ‘평택시 주한미군 주둔 지역 등 주민피해방지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운동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조례 제.개정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평택은 70여 년을 미군기지와 함께 살아오고 있습니다. 평택 주민의 약 10%가 미군이거나 미군속, 그들의 가족과 초청계약자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군(기지)은 평택 주민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밀접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미군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군기지 사건사고로 피해 입은 주민을 구제하기 위해 때때로 정부와 지자체가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활동가들이 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피해 당사자는 제대로 구제를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피해자 구제가 법률에 명시되어 있지만 예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실효성이 떨어져 피해자를 구제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법적으로 규정이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구제가 어려울 때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은 무엇일까 2018년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기지 문제는 국가 간 조약으로 지자체는 법률적 권한이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자체는 주민의 삶과 안전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피해 구제를 위해 지자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는 해야 할까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몇몇이 모여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2016년 이 후로 진행되었던 미군과 평택시, 미군과 평택시민 간의 소송사례를 살펴보고 정리해보았습니다. 또한 2016년 이후 언론보도된 사건사고를 정리해보면서 지자체 차원에서 만들 수 있는 법제도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며 관련 조례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조례 제.개정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역 특성과 주민 의사를
최대한 반영한 행정을
펼치는 것이 바로 지방자치,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조례 제·개정이라고 하니 거창한 운동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지역의 특성과 주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한 행정을 펼치는 것이 바로 ‘지방자치’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입니다. 조례는 지방자치단체의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조례가 주민참여보다는 행정편의를 우선하거나, 상위법령에서 위임한 사항 이외에는 선을 긋고 더 이상 고려하려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이 참여하고 주민들의 의사가 적극 반영되는, 지역 내 공공의 문제를 조례를 만드는 것이고 그 과정을 운동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례는 시민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들어가면 되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원하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조례 제.개정 운동은 공공의 문제에 대한 공부와 자료 수집, 정리, 의견 모으기, 전문성이 중요합니다.
‘평택시 주한미군 주둔 지역 등 주민피해방지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을 위한 과정
‘평택시 주한미군 주둔 지역 등 주민피해방지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자고 결정하고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조례안이었습니다. 조례안 마련을 위해 먼저, 피해자를 직접 대면하는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다음으로 평택시가 피해 당사자자가 되었던 ‘팽성하수처리장으로 불법 유입된 미군의 불명의 폐수 소송’과 ‘미군기지 주변지역 토양오염 정화비용 국가배상소송’ 사례를 검토했습니다. 또한 개인과 미군의 소송 사례도 검토했습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평택시가 미군이 불법으로 방유한 폐수로 벌금을 내야하고 미군이 오염시킨 땅을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정화 작업해야 하는 평택시 피해에 집중했습니다.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계속 반복되는 일이었고 지역주민 다수의 생명에 지장을 주는 피해이므로 지자체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대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주민피해, 평택시의 피해, 지역사회의 피해를 정리해 나갔습니다. 설명회, 토론회, 간담회, 심층인터뷰, 자료검토, 잦은 회의를 통해 조례안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다양한 의견을 모았고 조례 초안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이 조례안의 실효성과 법적 타당성에 대한 법률적 전문 자문이 필요했습니다. 전문 변호사를 찾아갔습니다. 우리가 마련한 조례가 실효성이 있는지, 용어가 적절한지, 법적으로 타당한지를 자문해 줄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미군기지 사안은 워낙 어렵고 전문영역이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전 위원장에게 자문을 받았습니다. 민변은 미군문제 소송 경험만 30년이 넘기 때문에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안들을 자문해주셨습니다. 두차례의 자문을 바탕으로 ‘평택시 주한미군 주둔 지역 등 주민피해방지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안을 확정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확정된 조례안을 가지고 우리는 주민이 직접 청구할 수 있는 ‘주민발안제도’를 이용해 청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방자치법이 올해로 전면 개정되면서 주민들이 참여해 조례를 청구할 수있는 길이 쉬워졌기 때문입니다. 청구 준비를 위해 조례안을 들고 관심있는 주민들을 만나 설명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은 의견은 먼저 해당 지역구 시의원에게 이 조례를 제안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었습니다. 해당 지역구 의원은 이 조례가 주민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거라는 이유였습니다. 주민발안으로 청구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1월 초, 해당 지역구 의원에게 ‘평택시 주한미군 주둔 지역 등 주민피해방지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대표 발의해 주실 것을 제안드렸습니다. 제안드린 의원은 이번 미군기지 옹벽으로 침수피해가 난 장등리 마을에 네 번째 피해가 났을 때 행정기관보다 먼저 찾아가 민원을 해결한 이종원의원입니다. 이의원은 2주간의 시간을 가지고 신중하게 조례를 검토하였습니다. 2주간의 검토 끝에 ‘발의한다면 지역구 의원인 본인이 발의하는 것이 맞다’며 대표발의하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이의원과 함께 12월과 1월 사이에 이 조례를 지역에 설명하는 지역 설명회와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처음 준비했던 주민조례발안제도가 무엇인지 설명드릴까 합니다. 주민이 직접 조례를 만들어 청구하는 것을 주민조례발안이라 합니다. 청구권자는 18세이상(선거권자) 이상의 주민이어야 하고 일정 수의 서명을 받으면 됩니다. 서명수는 법률에 인구규모별 6단계로 세분화되어 있는데<표 1> 평택시는 인구가 50만이 넘으니 청구권자 총수 100분의 1 이상 서명을 받으면 됩니다. 서명은 수기기명도 가능하고 전자서명도 가능합니다. 전자서명은 행정안전부의 ‘주민e직접’(juminegov.go.kr)로 접속한 후에, 주민조례청구에서 서명하면 됩니다. 주민발안조례를 통해 조례가 만들어진 대표적인 사례는 ‘학교 무상급식 조례’ ‘대학생 학자금 지원 및 운용 조례’가 있고 가까운 안성에서도 현재 주민이 직접 청구한 조례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주민발안조례 과정은 평택시의회 차원에서도 처음이라 우리가 문의했을 당시에는 필요한 절차와 과정을 숙지 못한 상태였고 시의회 홈페이지에도 세부적인 절차 안내가 없습니다. 주민조례발안 절차와 과정 등 자세한 내용은 행정안전부의 ‘주민e직접’ 사이트에 접속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표 2>
주민-지역운동-대의정치가 어우러지는 협동작업
조례를 만들거나 고치는 작업은 주민, 지역운동, 지방의원이 협동하여야만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례의 제.개정을 위한 운동은 반드시 지역 주민과 시의원이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의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시의원과 주민과의 관계를 실질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는 조례 제.개정 청구를 해서 조례를 주민들의 힘으로 발의하더라도, 시의원을 통해 지방의회 내에서 조례에 대한 찬성을 위한 시민들을 조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례 제.개정청구를 하기 위해 서명을 받을 때부터 지방의원이 함께 하면 주민들에게 조례의 통과전망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례 제.개정청구운동을 함에 있어서는 시의원의 역할이 무엇보다 필수적입니다. 이번 ‘평택시 주한미군 주둔 지역 등 주민피해방지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에도 믿을만한 시의원이 나서서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의 문제를 풀어가는 협치로써의 지역운동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조례제정 운동과 지역시민사회
조례 제.개정운동은 조례라는 지역차원의 제도를 바꾸기 위한 운동입니다. 그러나 모든 제도는 만들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도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감시하고 참여하려는 시민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따라서 조례의 내용도 주민들의 요구를 잘 반영해야 하지만, 조례 제.개정운동의 전과정에서 앞으로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시민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조례 제.개정 운동의 과정에서도 미군기지로 인해 발생한 지역의 피해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시민들이 발굴되고 훈련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조례 제.개정 운동은 그 자체가 ‘주민주체의 주민참여’를 이루어내는 과정입니다. 그냥 단체 활동가들 중심으로 한 조례 제.개정 운동으로 그친다면 이 운동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평택시 주한미군 주둔 지역 등 주민피해방지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 운동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하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