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원유희 시인

 

늙은 호박

 

담장 위의 늙은 호박

풋내 풍기던 것이 어느새 펑퍼짐한 아낙의

엉덩이를 떠올리게 한다

비와 바람의 모진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종(種)을 품었기 때문일 게다

씨앗을 품고 거둔다는 것은

식물이나 동물이나 천명(天命)을 따르는 일일 것이다

잘 익은 호박 안을 꽉 채운 황금빛 내력이

어찌 태양만의 것이랴

저 늙은 호박을 가르면

산모의 보약과 음식이 줄줄이 쏟아져나올 것 같다

나의 해산을 도와주던

친정엄마의 사랑이 아직도 끓고 있을 것이다

호박이 품고 있을 단단한 씨앗들을 생각하며

종(種)을 품고 양육하는

모든 모성에 경배한다

모성은 위대하다

 

 

* * *

 

 

붉은 가을비

 

서늘한 비의 왈츠다

빗방울들이 나뭇잎마다 통통 구르고 뛰어다니며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넓은 잎들은 심벌즈가 되어준다

푸른 시간을 다하고 슬금슬금 내려앉는 낙엽들이

지는 해를 향하여 손을 흔든다

지상에 자리 잡는 낙엽들은 가을비를 맞으며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빗방울이 주춤주춤 춤사위를 늦추는 사이

대지는 떨어진 낙엽들을 끌어안는다

본디 대지와 나무는 한바탕이었으니,

빗방울의 춤사위는 계속되고

나무들의 가을 엽서는 붉다

붉은 가을이다

가을비조차 붉다

 

 

원유희 시인 등단한경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평택문인협회 회원평택사랑 전국백일장 제24회,25회 당선
원유희 시인
<문학공간> 등단
한경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평택문인협회 회원
평택사랑 전국백일장 제24회,25회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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