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최현경 시인

 

보이스 피싱

 

여보세요

저는 당신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위급한 일이 생겼으니

지금 당장 은행으로 가보시죠

은행에는 많은 것들이 저축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내 생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진 빚 그것 갚으려면

대출을 해도 모자랐다

 

누군가 위독하나요?

사랑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기쁨은 지금 안정 중입니다

 

신발도 채 신지 못하고 달려간 그곳에는

텅 빈 운동장

황량한 바람만 불었다

나는 빈 통장을 손에 꼭 쥐고

발만 동동 굴렸다

 

내 잔고는 벌써 인출 해 가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빈털터리였다

누군가를 사랑한지도 오래 되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며 서 있었다

 

 

 

* * *

 

 

가을 회상

 

나만의 가을 준비를 시작한다

가을에는 네가 찾아오기에

어여쁜 모습 그대로

나는 외투를 꺼내 입는다

 

잎사귀 곱게 물든 나무들

벤치에 앉아 너를 기다려

서늘한 향기와 함께 걸어오는 너

떨어지는 낙엽을 깔며 내 옆에 앉는다

 

붉은 뺨으로 환하게 웃는 너

나는 그 잎을 주워 책에 꽂아

너를 오래오래 찾아보려고

 

네 미소가 세상을 덮고 있어

눈 깜빡할 사이에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와

겨울을 견디면 봄이 되겠지

꽃이 필 테니, 됐어

 

찬바람에 뒤돌아서는 너를 보내며

나는 울지 않는다

 

 

최현경 시인​​​​​​​​​​​​​​​​​​​​​평택문인협회 회원
최현경 시인​​​​​​​​​​​​​​
​​​​​​​평택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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