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읽기

유정이

시인, 문학박사

 

유정이시인·문학박사
유정이
​​​​​​​시인·문학박사

‘오곡백과가 무르익는’으로 시작되는 가정통신문을 기억합니다. 품질 낮은 누런 종이 위에 여기저기 잉크 번진 등사 글씨가 나른하게 놓여 있던 그 문장들은, 역시나 질 낮은 누런 종이봉투 속에 담겨 배달되곤 했습니다. 물론 택배기사 우리들은 제 역할을 제 때 수행한 적도 있었으나 한 철이 지나도록 가방 속에 내내 방치한 적도 많았습니다. 주로 가을 운동회나 소풍 일정을 알리던 통신문이었을 겁니다.

운동회도 소풍도 어느 결에 요원한 단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 상투적이어서가 아니고요, 정황상 가능하지 않던 이유 때문입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최소한의 군집 활동마저 불가능한, 그래서 우리는 잃은 것도 많고 안타까운 일도 많았던 고통스러운 시간과 참으로 오래 있었습니다.

 

능선을 한 구비씩 넘을 때마다

우리들 마음의 근육 더 단단해져

코로나19의 횡포가 조금 잦아진

요즘, ‘오곡백과 무르익는’ 가을을

맡으러 밖으로 나가볼까요?

기후는 또 어떠했나요. 날마다 기록을 경신하는 폭염과 가뭄 그리고 대책 없이 내리던 비와 그 범람들, 장마와 태풍, 더하여 혹한과 폭설도 그랬습니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 대로 대기록의 뉴스로 혼란스럽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오곡도 백과도 제대로 성장하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불가능했던 겁니다.

오랜 바이러스 정국과 예측 불허의 기후 변화가 지구의 환경과 인간의 의식을 장악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섯 곡식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것처럼 우주 유기체인 우리도 많은 부분 지체와 부진을 경험할 수밖에요.

인간을 숙주 삼는 바이러스 그 영원한 종식은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삼 년 여 지구의 운행을 멈추게 만들었던 코비드–19 횡포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에 힘을 실어야겠습니다. 비탈진 길을 한 번씩 오를 때마다, 능선을 한 구비씩 넘을 때마다 우리들 마음의 근육이 더 단단해지고 건강해졌을 겁니다.

들판에게 오곡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오감이 있습니다.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그리고 맛을 느끼고 만지는 감각이 그동안 꽤나 위축되었거나 변형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마스크로 입을 막아야 했고요, 서로의 눈을 피하고, 만나기를 꺼리며 살아야 하는 환경 속에서 별스런 변화가 없었다면 그 역시도 기이한 것이지요. 유아들의 어휘력이나 지각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보고 말하고 만지고 느끼는 단순한 감각의 중요성이 부각되어야겠습니다.

오곡백과의 완전한 결실은 없지만, 몸살을 앓던 지구에게도 어느새 가을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코발트 하늘 위로는 뭉게구름들이 갖가지 모양을 지으며 느리게 흐르고요, 그보다 더 느린 기다림이 고요히 흐릅니다. 손끝으로 푸르른 가을이 다 만져질 것만 같습니다.

두텁게 내리누르던 마음의 마스크를 벗고 가을을 맡으러, 가을을 만지러 밖으로 나가볼까요? 멀리 두었던 청명이도 데려오고 희망이도 모셔오고요, 누런 봉투 속에 묵혀 그동안 오래 전달하지 못했던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호시절을 이제쯤 제대로 배달하러 가 보실까요?

 

당신 손닿는 곳마다

잎사귀가 하나씩 생겨난다

가지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매달린다

나는 새로 태어난 잎사귀와 손뼉을 치고 웃거나

어깨 위로 모이는 햇볕과 얼굴을 부비며 논다

내게 손바닥을 보이며

잎사귀는 어떤 운명을 궁금해 하는 것일까

우리는 가지 않은

다른 길이 궁금하다

지팡이는 어디다 두고

나는 왜 두꺼운 안경과 나란히 앉아 있었나

당신 손닿은 곳마다

잎사귀가 계속 태어난다

나는 새로 태어난 잎사귀와 입을 맞추거나

손뼉을 치며 웃는다

당신은 내게로 와

내 몸의 일부가 된다

내 몸과 손뼉을 치는 잎사귀를 그러므로 다시

나는 웃는다

- 유정이 ‘그러므로, 다시’ 전문

※외부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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