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란다,
삽자루 쟁기 모두 버리고
황새울, 흑무개들, 신대리뻘에
짚단이 차곡차곡 쌓이지 못하게
썰물처럼 빠져 나가란다
늙은 새로 날아 오르는 헬기
검은 철조망에서 덜덜거리다
시린 빛으로 눈동자에 박힌다
두 집메 세 집메 마음 속의
집들이, 활주로 위에서
픽픽 쓰러져 야윈 가슴을 덮는다
방금 착륙한 금속성 한 줄기
철조망에서 더 떨어지라고
석유냄새 섞인 억지말을 내뱉는다


나가란다,
목까지 차오른 거대한 파도
몹쓸 지독한 둑을 무너뜨리며
들판으로 바다처럼 나가란다
흘러 왔던 기억을 더듬어
다시 옛 물길로 돌아가는 巡禮,
벼의 그루터기들이 불쏘시개가 되어
자꾸만 발에 밟힌다
지푸라기 검불 하나하나에
숨은 함성들이, 빈 들판에서
장한 들불로 끝없이 번져가며
뜨거운 발자국을 남긴다
황새울, 흑무개들, 신대리뻘이
불길에 몸을 뒤집는다
나가자고, 일어서는 불과 악수하며
너덜한 꿈을 지져대는 流民들,
불이 따뜻하다.


권  혁  제
-경기도 평택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단국문학상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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