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복천 낮달

통복천 다리 위에 엉덩이 걸쳐 앉은 그녀

한낮의 햇볕에 고개도 들지 않고

감자 두어 소쿠리, 나물 몇 모둠,

개 복숭아 소쿠리 앞에 놓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쳐다보지도 않고

시든 나물 잎을 갑옷 같은 손으로 떼고 뗀다

그녀의 얼룩진 시간도 떼어서 통복천으로 흘려보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녀 손가락에서

새 잎으로 돋아나는 나물들을 보지 못한다

그녀 눈동자도 마주친 일이 없다

뜨거운 한낮 통복천 다리 위

거북이 등 같이 자리를 틀고 앉아있는 낮달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장마전선

작은 소리에도 움찔 놀라는 엄마

머리 위에 굵은 장대비가 내리고 있네

평생 동안 지붕이 새는 집에서 엄마는

비를 막아내느라 머리가 다 빠졌네

엄마는 아이들의 눈물을 받아내려

위가 부풀어 올랐네

아이들은 엄마 배는 부르다고 저희들만 아귀같이 먹었네

오랜 시간 후 아이들이 빠져나간 엄마 위는

쪼그라들고 뱃가죽도 쭈글쭈글 해졌네

산해진미의 상 차려도 쪼그라든 위장은 펴지지 않고

머리는 다시 나지 않네 얘야 지붕을 고쳤는데도

왜 이렇게 비가 새는 거지

엄마 머릿속에서 굵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리고

엄마 이제 우리는 배고프지 않아요

집도 새 집으로 지었잖아요

이제 햇빛이 비치는 양지로 나오세요

평생 홀로 오 남매 키워 온 엄마

마른 관절 사이로 밤새도록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네

엄마 걸을 때마다 장대비가 무릎을 타고 흘러내리네

 

 

 

김영자 시인고려대 인문정보대학원 졸업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 경기시인협회 이사경기도 문학상 본상 시부문 수상 (2001년) 시집  
김영자 시인
고려대 인문정보대학원 졸업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 
경기시인협회 이사
경기도 문학상 본상 시부문 수상 (2001년) 
시집 <문은 조금 열려 있다>
<아름다움과 화해를 하다>
<푸른 잎에 상처를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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