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평화센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평택 주한미군 기지(캠프 험프리스)를 4월 7일 방문했다. 몇몇 대통령의 경우 당선인 시절 용산 한미연합사를 방문한 사례는 있으나 당선인이 직접 평택 주한미군 기지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군 부대보다 미군 부대를 먼저 방문한 것 또한 첫 사례이다 보니 윤 당선인의 이번 방문에 귀추가 주목됐다.
그런데 이번에 좀 특이한 사항이 있다. 일단은 언론 취재가 불허됐다. 모든 일정이 다 비공개로 처리된 것. 다음날 기사에는 폴 러캐머라 사령관과 10분가량 독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선인과 주한미군 사령관 단둘이 만났다는 이야기인데 한반도 위기관리와 안보, 한미동맹에 대한 의기 투합 자리였다면 왜 굳이 비공개로 처리했을까.
윤 당선자는 용산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렬하다. 이사 날짜까지 공지하며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그렇다보니 예정되었던 용산 미군기지 반환도 계획보다 일찍 반환 받아야 된다. 용산 시대를 앞당기는 데 주한미군의 협조가 꼭 필요한 사항인 것이다. 밀담이 필요했던 이유라 추정해본다. 하지만 윤 당선인 참모들은 방문 목적을 ‘한·미 군사동맹과 연합방위태세를 통한 강력한 억제력 강화’를 위해서라 발표했다. 현재 한·미 군사동맹 관계가 크게 손상되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윤 당선인과 그 참모들. 이 손상된 것을 복원시키는 과정에서 연합사를 방문하고 주한미군 사령관과 별도의 개인적인 신뢰를 쌓는 기회로 활용했다는 논리다.
윤당선인의 평택주한미군기지 방문
목적이 전쟁 억제라면 지난 정부
‘무조건 부정’은 자기부정일 수도
인수위의 성숙한 모습 기대한다
윤 당선인의 방문 목적에 대해 옳다 그르다 평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문제는 방문 목적으로 내놓은 ‘한·미 군사동맹과 연합방위태세를 통한 강력한 억제력 강화’ 내용은, 인수위의 정교한 정세 판단이나 전문가적 소견이 담긴 것이 아니라 지난 정부와의 정책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닥치고 한미동맹’으로 귀결된다. 무엇을 어떻게 정상화하고 재건해야 하는지는 구체적이지 않고 다만 큰 틀에서 ‘모든 것을 뒤집겠다’는 뉘앙스뿐이다. 하지만 정작 미국은 윤 당선인 측의 ‘동맹 정상화’ 의욕에 뜨뜻미지근하다. 우크라이나도 신경 써야 하고, 아프칸에서도 철군해야 하고, 바이든의 치매설도 연달아 터지고, 사실 미국은 여력이 없다. 덧붙여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전쟁을 일으키되 겪지 않는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대리전, 그곳이 한반도가 될 가능성은 무척 높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서 보듯 자국민이 집단학살당하고, 국토가 참혹하게 유린 당하는 전쟁…. 진정 누구를 위한 한미동맹인지 묻고 싶다.
윤 당선인의 ‘연합방위태세를 통한 강력한 억제력 강화’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더 이상 제재할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북한의 이번 ICBM 발사 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정의용 외교부장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대응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려서 북한에 대해 현재 미국도 추가로 제재할 만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그동안 취한 독자제재들도 북한이 전혀 고통을 느낄 만한 것들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2006년 북한이 처음으로 핵실험을 한 이래 지속적으로 가해진 대북 제재가 쌓이고 쌓여 이제 더 이상 할 만한 제재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 당선인의 ‘강력한 억제력 강화’는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현재로선 윤 당선인의 평택 미군기지 방문 목적도 그렇고, 외교안보 정책 행보도 그렇고 뭔가 억지스럽다.
우리는 정권 교체 지점에 위기관리나 안보 문제에 대해서 전후임 대통령들이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세대다. 지난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뒤집겠다는 의도는 자기 부정과 다름없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인수위의 조금 성숙한 모습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