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위원장
김기홍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위원장

근로기준법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에 전태일은 절망하고 분노했다. 전태일이 살던 당시와 오늘날 노동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 1000만 시대, 노동자이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 오늘날 전태일은 아주 분명한 목소리로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해서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외쳤을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고용, 임금, 휴업수당, 휴일, 노동시간, 취업규칙, 단체협약 적용 등 노동조건에 관한 최저기준을 정한 기본법이다. 그러나 법 제11조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해야 할 이 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계약서 작성 등 일부 조항 외에 모두 적용하지 않고 있다. 전체 노동자의 60%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들은 대부분 영세한 규모로서 이곳의 노동자들은 법정 최저기준도 보장받지 못한 채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법적 최저선 이상 보장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회사를 여러 개의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쪼개는 사용자도 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5인 이상이 일하고 있는 곳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법 적용을 다르게 하는 비정상적 상황은 지금 당장 바뀌어야 한다.

중대재해 일으킨 기업은 
벌금 450만원… 솜방망이 처벌

산재 사망 노동자가 없으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돼야

아울러 모든 노동자가 노동기본권을 누리고 노조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노조법’ 제2조 개정을 통해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 노조법 2조는 ‘정의’ 조항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규정한다. 이 부분에서 근로자, 사용자, 사용자단체, 노동조합 등을 정의하는데 지금의 노조법 2조 규정은 사용자도, 근로자도 그 범위가 너무 좁다.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가 노조법에서 배제되고, 원청 사용자가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20년째 노조법2조 개정을 요구하는 이유다.

이와 같이 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는, 사용자들이 법에 따라 당연히 져야 하는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 외주화 등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려왔고, 층층이 쌓인 복잡한 고용 구조 속에 진짜 사용자는 숨고, 수많은 비정규직은 자신의 노동조건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원청 사용자를 만나지도 교섭하지도 못하는 현실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법’에 따른 사용자의 정의 역시 제2조 개정을 통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 등을 포함해 확대해야 한다.

지금도 코로나19 사망자의 8배가 넘는 2400명의 노동자가 매년 산재로 사망하고 있다. 51년 전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지만 일터는 절대 달라지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 범죄 재범률이 97%에도 이르지만 여전히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은 고작 벌금 450만원밖에 되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있을 뿐이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에서 40명의 건설노동자가 죽었지만, 기업에 내려진 벌금은 노동자 1명당 50만원에 불과했고, 결국 2020년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창고 현장에서 또다시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원청인 재벌 대기업은 위험을 외주화해서 하청 노동자가 사망해도 하청 업체만 처벌받을 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일터에서 억울하게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없기 위해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돼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기업과 기업의 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이다. 반복되는 노동자 시민의 죽음은 명백한 기업의 범죄이다. 영국에서는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을 2007년에 제정해 불과 2년 만에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며 현재까지도 영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산재사망률 최하위 수준의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OECD 2015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는 영국보다 20배 이상 많은 10.1명이다.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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