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안전한 도시 위한 여정에 과제만 쌓이다
‘평택시 화학사고 대비체계 구축방안을 찾아’ 마지막 5회 차에는 우리가 사는 평택시를 다루려 한다. 지난 3월 평택시의회 화학물질 안전도시 특별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고 10월 4일 평택시민환경연대 등 환경단체들이 삼성전자가 조성하는 평택반도체산업단지에서 하루 발생하게 될 34만톤의 방류수와 배출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대책으로 촉구하며 우려를 표명했다. 10월 22일엔 송탄산업단지에 있는 화학약품 제조 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기준치의 20배가 넘는 황화수소에 노출돼 뇌사 상태에 빠져 병원에 이송됐고 끝내 숨을 거뒀다.
평택시에는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은 2020년 말 기준 324곳이 있으며 곳곳에서 산업단지가 조성되는 만큼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평택시가 앞에 놓인 화학물질 안전관리 위원회 구성·운영, 화학물질 취급장 조사, 화학물질 안전관리계획 수립, 화학사고 대비를 위해 민·관·산 협력과제 도출 및 협력체계 구축, 화학사고 대응 합동훈련 등의 과제를 풀려면 당장 무엇을 해야할지부터 살펴보겠다.
APK 가스공장 건립 반대운동에서
화학물질이 지역사회 화두 떠올라
평택에서 화학물질이 지역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것은 2017년. 당시 삼성반도체공장 특수가스 공급업체인 에어프로덕츠코리아(APK)가 장당산업단지에 평택공장 건립을 추진했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인근 장당동의 아파트 입주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APK가 평택공장에서 질소·수소·헬륨·실레인·암모니아 등의 특수가스를 하루 4.5톤 취급·생산할 계획이었다. 당장 공장 위치가 문제가 됐다. 반경 1km부터 주거밀집지역이 시작되고 1.5km 내에 장당초, 장당중, 효명중·고가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폭발 위험이 있거나 해를 끼칠 수 있는 특수가스를 취급하는 공장의 설립을 추진하면서 주민은 물론 해당지역 시의원에게도 알리지 않아 ‘밀실행정’ 논란도 빚어졌다. 특히 2015년 9월 18일 열린 주민설명회에서 주민이 “불산을 직접 취급하지는 않지만 삼불화질소가 누출돼 수분과 결합하면 불산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를 질의하자 업체 관계자가 이를 부정하지 못하면서 가스 폭발·누출뿐 아니라 2차 피해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APK 가스공장 건립 반대운동은 이후 평택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삼성전자라는 기업이 평택의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고 시민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유효했지만 언제든지 시민의 건강과 삶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시민들이 생겨났다. 그 결과 화학물질에 대한 주민 알권리를 보장하고 평택에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례제정, 계획수립 등 준비 마쳤지만
평택시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 불투명
2016년 9월 경제·개발도 중요하지만 우리 가족의 안전과 건강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모여 평택 건강과생명을지키는사람들을 창립했으며 그해 10월 ‘평택시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관한 조례안’이 제정됐다. 이듬해인 2017년엔 평택시가 ‘화학사고 예방·대비·대응을 위한 지역대비체계 구축사업’에 선정돼 평택에 적합한 화학사고 대비체계 구축의 기대감을 높였다. 그 결과 평택시는 조례 제정, 지역대비체계 구축 등으로 화학사고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지자체 중 하나로 꼽혔다. 하지만 산업환경국이 환경농정국으로, 환경농정국이 다시 환경국으로 바뀌면서 환경이 정책 우선순위로 떠올랐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화학사고 대비체계 구축은 조금씩 밀려나는 흐름이 보이고 있다.
비유하자면 쌀을 씻고 밥물을 부어 솥은 안쳤는데 불을 켜지 않아 밥을 못 짓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즉, 시민사회의 요구로 법적·제도적 준비를 마치고 계획도 세웠지만 평택시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지가 명확치 않다. 당시 지자체가 취해야 할 조치가 무엇인지는 기획취재 2회 차와 3회 차에 실린 박소영 서산시 환경안전팀 주무관과 3회 차에 실린 배미옥 청주시 팀장의 인터뷰에서 유추할 수 있다. 서산시는 주민들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자 전담부서로 환경생태과에 환경안전팀을 신설했고 청주시는 화학사고는 지역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재난이라는 개념이라 인식하고 안전정책과에 화학안전팀을 신설하고 환경민원 업무와 분리시켰다.
평택의 경우 시민사회가 화학사고에 대비하려면 화학사고 전담공무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시는 “2015년부터 화학물질 관리업무가 환경부에 이관됐기 때문에 지자체에는 관련 조직도 없고 인력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다 보니 화학사고 대비체계 구축사업을 담당하는 전담 공무원이 없고 업무 영역이 점차 불투명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평택시 앞에 화학물질 안전관리 위원회 구성·운영, 화학물질 취급장 조사, 화학물질 안전관리계획 수립, 화학사고 대비를 위해 민·관·산 협력과제 도출 및 협력체계 구축, 화학사고 대응 합동훈련 등 과제만 점차 쌓여갔다. 전담도 아닌 0.5의 업무 분량을 받은 담당 공무원이 대응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환경사고 대응 전담팀 신설 검토
화학물질조례 전부개정 상정 준비
최근 일각에서 긍정적 움직임이 보인다. 시는 화학사고를 비롯한 내년 각종 사고에 대응할 전담팀의 신설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 표준조례안을 반영해 화학물질 조례 전부 개정안도 11월 말 열릴 시의회 정례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화학사고 대비체계 구축 업무를 담당하는 환경지도과는 화학물질 취급사업장 현황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윤영배 환경지도과 팀장은 “올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화학물질 취급장 현황을 파악하는 조사를 진행해 관련 정보를 확보하고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사 시기가 연말과 연초로 정해진 것은 이 기간에 환경지도 업무가 그나마 줄어들기 때문이다. 설령 조사를 시작했다 해도 환경 관련 사건이 터지면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기획취재 4회 차 군산시 사례에서처럼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담당자가 업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현재 평택시에서는 가능할 리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 평택시의회 화학물질 특위 대표위원인 권현미 시의원은 “실질적으로 화학사고가 일어날 것을 대비한 평택의 대비체계를 마련하려면 화학사고 관련 업무만을 담당하는 전담자의 배치는 매우 시급하다”며 “이를 위해 시민사회의 관심과 지자체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미니인터뷰 | 최춘식 평택건생지사 사무국장
화학물질 안전관리 위원회 운영 활성화 필요
전문성 갖춘 공무원
충원해 업무 일관성 갖춰야
평택시의 화학사고 대비체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현재로선 아쉬운 점도 많고 부족한 점도 많다. 10월 22일 송탄산단에서 50대 노동자가 황화수소에 노출돼 결국 사망한 사건은 엄연히 화학 사고다. 안전관리 요원이 옆에 있었는데 발생한 것이라 심각성이 더하다. 만약 화학물질 취급 매뉴얼이 있었다면 작업자가 황화수소가 발생했고 치사율이 높았다면 생명까지 잃지 않았을 거라 본다.
화학사고 대비체계는 주민 못지않게 노동자들에도 필요해 보인다
화학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다치는 사람은 회사 구성원들이다. 화학사고 대비체계 구축을 위해 민·관·산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택시가 화학사고로부터 안전한 도시가 되려면
당장의 과제는 두 가지다. 먼저 전담 공무원을 확충해 화학사고 대비체계 구축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화학물질 안전관리 위원회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민·관·산이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면서 화학사고에 대비하고 피해를 줄일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화학물질 안전관리 위원회다. 위원회가 활성화돼 본연의 역할을 해야만 평택시의 화학사고 대비체계 구축사업이 시작되리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