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총
포크레인의 억센 손아귀에 끌려나오는
패갑들이 아파트 신축현장을
시끌벅적하게 하고 있다
바다와 땅이 등 돌릴 적
모두 입 다물고 한 무덤 팠는데
부관참시의 형장 되어 아수라장이다
무더기로 끌려나오는 백골들
간혹 햇살 오랏줄에 화석 같은 아상을 털고
입을 여는 무딘 생애도 더러 보인다
그냥 묻어둘 수 없다는 현장의 문초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죄목들이다
갯벌에 숨어서
떠나간 바다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죄
파도소리 들으며 노랫가락 익힌 죄
바람의 유혹에 휘파람으로 화답한 죄
달의 정기 받아 몸 불린 죄
낱낱이 들추어내지만
밝은 대낮 어디에 비추어도 죄 없는 죄목이다
억겁의 시간을 환골탈태한 패갑들
보석되어 반짝이는데
가공할 문명은 유적지마저 파헤치고
인간의 집을 올리겠단다
* * *
함초
나물접시에 시선이 머물자
식당주인이 바닷물을 먹고 자라는 풀이라며
많이 먹어도 갈증이 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한 젓가락 맛을 보니 짭짜름하면서도 은근히 달달한
바다의 언어들이 살짝살짝 읽힌다
파도는 개펄을 들락거리며
외도를 즐기듯
하찮은 식물에게도 제 피를 나누어주었으리라
씹을수록 간간한 파도의 밀어들이 속살거리고
심해의 전설이 유언처럼 고개를 든다
통통하게 염장된 마디마다
바다의 뼈대들이 신생의 가문을 내세우고 있다
스스로 간 맞추는 내성을 보며
세상에 간 맞추지 못해 외톨이의 시간이 더 많은 나는
애꿎은 함초나물만 집어먹는다
바다의 이력들을 하나하나 들춰보는 사이
방금 달려온 파도가 개펄을 한 바퀴 돌아나가며
무슨 당부의 말을 또 적어놓고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