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은 국제적 시립오케스트라 모델 만들기에 여건 충분

 

가수 정태춘이 평택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음유시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정태춘과 평택 팽성읍 계성초등학교 동창이면서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또 다른 유명 음악가가 있다. 지휘자 최선용. 클래식 음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지휘자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설립 당시 경기팝스오케스트라) 창립 지휘자이자 소프라노 조수미 사단의 전속 지휘자로도 활동한 최선용(68)은 평택중·서울 예고, 서울 음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벨링크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이후 오페라의 거장 마르크스 에르데이, 쟈코모 쟌니에게 오페라, 오라토리오 전문 지휘를 사사하고 〈백조의 호수〉,〈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보엠〉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갖고 국내 최다 무대 지휘를 해 오고 있다. 교향곡과 오페라, 발레 뿐 아니라 뮤지컬, 영화음악, 팝, 대중가요, 째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지휘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이기도 하다. 
현재 국내 유일의 민간기업 오케스트라인 ‘린나이 팝스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그가 올해 팽성읍 계양로 국제대교가 올려다 보이는 곳에 음악카페를 차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최선용 지휘자를 만나 그의 음악 여정과 평택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았다. 

음악에 입문한 계기가 궁금하다
평택중학교 2학년 때 음악 시간에 피리를 부는 소리를 듣고 음악 선생님께서 무조건 밴드부에 들어오라고 해서 반강제로 밴드부에 들어갔다. 방과 후 늦게까지 밴드부 연습을 하면 집에 가는 버스가 끊기고 해서 힘들어 그만두려 했으나 선생님께서 놓아주질 않았다. 그래서 어머님께 부탁해 밴드부에서 빼내 달라고 했는데, 어머님을 만난 선생님께서는 “선용이는 앞으로 음악을 해서 크게 성공할 사람이니 계속하게 해야한다”고 하는 바람에 어머님께서 오히려 설득당하시고 돌아오셨다. 이후 선생님의 배려로 선생님 댁에서 기거하며 연습해 1970년도에 서울예고에 들어가게 됐다.

천재적인 소질을 타고 났나 보다
원래 소질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서울예고 처음 들어가서는 구박덩어리였다. 전체 학생이 60명이었는데 남학생이 10명이었다. 음악의 기본인 악보 보고 노래 부르는 시창이나 청음을 못해서 고개 들고 다니질 못했다. 감수성이 예민할 때라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도 우리 동네에서는 제법 한다고 해서 유학왔는데 그만두더라도 이겨보고 그만두자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새벽 4시 통금이 해제되자마자 학교에 와서 무조건 연습했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1학년 2학기 정도 되니 선생님들과 동료 학생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실력이 늘게 되었다. “선용이가 원래 저렇게 잘하는 학생이었나” 하는 반응이었다. 그 때가 큰 고비였던 것 같다. 고2 때 남들이 잘 하지 않는 호른을 배우기 시작했고, 서울 음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지휘를 하게 된 계기는 
1980년 서울음대를 졸업하고 1981년 이태리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벨링크 음악원에서 4년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85년에 귀국해 서울시향에 있으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었다. 그러다 1991년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제주도 가족여행을 갔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경을 헤매다 다시 살아났고, 호른 연주는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이웃에게 봉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휘를 선택했다. 개인적인 꿈이 오페라 지휘자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유럽 유학시절 부전공으로 지휘를 공부했었다. 당시 나이가 39세였다. 
사고 후 지팡이를 짚고 다시 서울시향에 가서 당시 박은성 지휘자에게 지휘를 해보겠다고 하자 당시 서울시향에서 지휘자를 양성하기 위해 막 설립한 지휘자 연구원 코스에 입학하라고 권유했고, 첫 시연에서 베토벤의 운명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나보다 더 훌륭한 지휘자가 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다. 

어떻게 오페라와 발레 음악 전문 지휘자가 되었나
당시에는 오페라 전문 지휘자가 우리나라에 없었다. 오페라를 전문적으로 지휘하고 싶다고 하자 박은성 지휘자가 이 분야 세계 최고의 지휘자가 마침 서울시향 객원 지휘자로 있다며 헝가리의 거장 미클로스 에르데이(Mikls Erdlyi)를 소개해 주었다. 오스트리아 바덴으로 달려가 미클로스 에르데이로부터 베르디가 작곡한 유명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와 <백조의 호수> 지휘법을 배웠다. 40세 때인 1992년에 개인 오케스트라인 서울아트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유명 연주가들과 공연을 시작했다. 이후 오페라 <라보엠>을 지휘하고 싶었는데 마침 당시 서울시립오케스트라  김신환 단장이 밀라노의 쟈코모 쟌니를 소개해줘 밀라노로 달려가 배웠다. 발레는 당시 리틀엔젤레스가 소속된 유니버셜발레단의 단장인 뉴욕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로이 토비아스(Roy Tobias)가 기회를 주어 지휘하게 되었고, 유니버셜발레단의 일본 10개 도시 <백조의 호수> 순회공연의 지휘를 맡기도 했다.

소프라노 조수미 아리아독창회 5개 도시 순회공연 지휘, 경기팝스오케스트라 예술감독, 뮤지컬, 영화음악, 팝, 대중가요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 최고의 지휘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97년 서울아트오케스트라 활동 이후 조수미 전속 기획사와 함께 5년 동안 조수미 음악회 지휘를 했고, 1997년 경기팝스오케스트라 창단과 더불어 초대 상임감독으로 취임해 2002년까지 활동했다. 당시 경기팝스오케스트라를 국내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만들었다. 이후 2007년 린나이팝스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으며 프리랜서 지휘자로 교향곡과 오페라 발레 재즈 빅밴드 영화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지휘를 해오고 있다. 각종 전야제 공연이나 콘서트, 신년·송년음악회, 국내·외 다양한 공연도 해오고 있다.

고향 평택으로 오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이곳 계양 고향에 집짓고 농사짓는 멋진 공간을 갖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있는 이 곳은 증조할아버지가 물려준 땅인데 이전에는 불모지였다. 미군기지 이전으로 국제대교가 생기며 접근성이 좋아져 이곳에 농막을 짓고 주말농장같이 가끔 왔다. 그러다가 코로나19로 연주가 적어진 요인도 있고 이곳 풍광이 너무 좋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건물을 새로짓고 카페를 열어 올 5월에 오픈하고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살고 있다. 카페는 처음이지만, 찾아오는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을 갖고 있어 매우 행복하다.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의 저변은 여전히 넓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가 위기라고 생각한다. 서울과 부산 등 전국의 많은 지방자치단체에 관립 교향악단이 많다. 그러나 교향곡, 서곡, 콘체르토 등 고전음악 위주라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관객이 와서 즐길수 있는 연주를 해야 한다. 음악가들만의, 자기만의 연주는 안된다. 관립 연주단체들도 특색 있게 발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서울 등 몇 곳은 세계적 수준의 심포니로 발전시키고, 부산이나 제주 등은 팝스오케스트라를 발전시켜야 한다. 대구는 오페라나 발레 전문으로 특화시키는 등 차별화 전략을 취해야 한다. 

평택과 평택의 음악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을 것 같다
평택에 대해서는 외지에 있다 보니 크게 신경쓰지 못했지만, 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평택은 음악적으로 아주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주한미군이 있는 국제도시의 특성을 잘 살려 수준 높은 관객의 수요에 부응해 나가고, 남부·서부·북부 등 공연기회가 많은 지역적 여건을 잘 활용해 나가야 한다. 고덕에 건립되는 문화예술의전당 등 공연 여건도 좋아지고 있다. 인구 80만의 도시로 성장하는 평택에서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평택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줄 수 있는 방안으로 평택시립오케스트라 설립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평택시립오케스트라는 예산이 많이 소요돼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시립 오케스트라라고 해서 예산이 많이 든다고 말할수 없다. 평택시에서도 시립오케스트라를 창립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략 단원의 30퍼센트는 정단원으로 하고 70퍼센트는 객원으로 하며 점차 정단원을 늘려나가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들면, 평택시에 프로축구단을 창단한다고 하자. 그런데 11명 선수 가운데 3명만 정식 프로선수고 다른 선수들은 아마추어나 조기축구회원이라고 하자. 이런 구성으로 다른 프로구단과 상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시립오케스트라는 프로축구와 비슷하다. 전국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을 모아야 하다. 그래야 경쟁력이 있고 시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운영과 관련해서도 1년 계약으로 주 2회 연습하게 한다면 저렴한 예산으로도 가능하다. 대신 공연을 자주 갖게 해서 시민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계약 만료될 때 20퍼센트 정도씩만 정식 단원으로 순차적으로 선발해 나간다면 3년 내지 5년 후엔  평택시민 속에 고정 팬들을 확보해 나가면서 멋진 시향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평택은 국제적으로 성공한 시립오케스트라의 모델을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여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어떠한가
현재 하고 있는 린나이팝스오케스트라 활동을 계속하면서 고향의 음악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봉사하고 싶다. 평택에서 태어나서 평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음악가로서 평택에 국제적으로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음악적 전통을 만들고 후배들이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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