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길 중 천주교 평택성당
‘평택섶길’은 평택의 작은 길들이다. 16개 코스 오백리에 이르는 길은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 곁에, 호젓한 숲에,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유서 깊은 시내 골목과 재래시장에 이야기와 함께 짜여 있다. 섶길 여정에는 문화유산과 기념물, 역사 인물에 대한 테마들이 있다.
공직 은퇴 후 취미생활을 찾던 중 섶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필자는 평택에서 나고 자랐지만 섶길을 처음 걷는 날 곳곳에 숨어있는 경관이 놀라웠다.
그림 그리기에 약간의 소질이 있는 필자는 평택섶길 풍경을 펜화로 그려 간단한 글과 함께 평택시민신문에 한달에 한번 연재한다. 이번 연재를 통해 많은 분들이 섶길을 함께 걸으며 우리 고장을 더 알게 됨은 물론 건강과 즐거움을 얻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천주교 평택성당은 올해로 93년 된 평택 최초의 성당이다.
까만 뾰족지붕의 고딕풍 옛날 성당 건물은 어린 시절 시내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높은 집이었다. 지금의 본당 건물은 1971년 신축된 것이다.
왼쪽 소나무 아래 조각상은 몰리마르(모(牟)요셉) 신부의 흉상(胸像)이다. 몰리마르 신부(1897~1950)는 프랑스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17세기 아시아지역 카톨릭 포교를 위해 설립) 소속으로 한국에 온 후 1928년 사재를 보태 평택성당을 건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를 지낸 평택성당의 아버지다.
그는 1934년 서정리 성당도 건립하고 겸임했다. 이후 부여 금사리 성당에서 사목하던 중 6.25를 당하여 주변의 피신 권유에도 성당을 지키다가 공산군에게 납치 감금되었다. 그 후 퇴각하던 공산군에 의해 1950년 9월 26일 대전 목동 수도원 뒷산에서 학살되어 순교하였다. 우익 인사들과 함께였다. 당시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돌과 벽돌로 쳐서 구덩이에 첩첩이 넣어 죽이는 참혹한 광경이었다고 전한다. 그는 납치될 때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듯, 부여와 규암에 남아있던 자신의 사재(私財)를 성당건립에 보태쓸 것과, 교우들에게 신앙을 지켜 줄 것을 당부하는 유언을 남겼다. 대전 목동성당 묘지에 안장돼 있던 신부의 유해는 2003년 평택 본당으로 이장하여 자신이 건립한 정든 성당의 뜰에 잠들어 있다.
2018년 2월 평택성당 성지순례단은 몰리마르 신부의 고향인 프랑스 몽펠리에 생가를 방문하고 70대 할머니인 조카를 만났다. 순례단에 함께 참여했던 이철순(테오필로) 사목회 총회장은 방문 당시를 회상하며, 유복한 생활을 마다하고 종신토록 남을 위한 험난한 삶을 택했던 신부의 숭고한 정신에 대해 토로한다.
종탑 벽면의 성모승천상은 부조와 바탕이 모두 흰색이어서 자세히 보아야 모습을 알 수 있다. 평택성당 70년사 표지 사진엔 푸른 바탕에 흰 부조가 원래 색상으로 짐작된다. 흰색이 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원모습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모처럼 개인 파란 하늘이 반가워 푸른색을 추가하였다.
성당의 앞뜰엔 성당과 함께 나이 든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소나무, 별목련, 마로니에, 청단풍 등 푸르름으로 어우러진 모습이 보기 좋다. 정면 느티나무는 200년 되었다. 성당이 건립될 때도 고목이었을 것이다. 나무는 몇 해 전부터 가지가 마르고 몸살이 심하여 작년에 전문가의 치료와 수술을 받은 결과 올해는 짙푸른 잎을 돋우며 회생하고 있다. 지금은 잔가지가 없어 민망하지만 몇 해 뒤에는 당당히 수세가 회복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