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대대로 살아온 원정리 지키는 환경운동가
13대 조상이 원정리에 터를 잡아
매립장 문제로 환경문제에 관심
경제발전보다 주민의 삶이 먼저
소각장 등은 공공에서 운영해야
일생을 포승읍 원정리에서 살아왔다던데
포승읍 원정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왔다. 천안전씨 62대손인데 13대 조상이 원정리에 터를 잡아 여태까지 쭉 살아왔다. 원정초등학교 2회 입학생인데 2학년 때 내기초로 갔다가 4학년에 다시 원정초로 와서 졸업했다. 지금이야 항만과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많이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외진 동네였다. 오죽하면 6.25전쟁 때 피난 오던 곳이었을 정도다.
환경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있었는지
사실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농사 짓고 동네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살다가 1996년에 원정2리 이장을 맡았다. 그런데 2000년에 포승국가산업단지에 쓰레기매립장과 소각장이 들어선다고 시에서 통보가 왔다. 마을이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원정리를 비롯해 홍원리·만호리·내기리 등 이장 20여 명이 모여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다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체가 필요하다고 해서 포승지역 이장단이 모여 2001년 원정리환경대책위를 만들었다. 그때 현덕면에 사는 정수일씨가 “환경문제는 원정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니 나중을 생각해서 평택환경위원회로 이름을 바꾸라”고 권했다. 사실 평택 전체는 엄두가 안 나서 서평택환경위원회라고 이름을 바꿔 2001년 경기도비영리단체로 등록했다. 처음에 사무국장을 맡았다가 2002년 위원장이 됐다. 이후 폐기물처리시설, 공장, 산업시설 등 15곳을 꾸준히 감시해왔다.
당시 금호환경 등 환경 문제가 연달아 터진 걸로 기억한다
금호환경 문제는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당시 다이옥신 배출기준이 40나노그램인가 했는데 그 10배가 넘는 300~400나노그램이 검출됐다. 지금 평택에코센터의 배출기준이 0.1나노그램인 것을 감안하면 금호환경이 있던 안중읍 성해리 주민들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괴태곶 봉수대 해맞이는 어떻게 시작했는지
1980년대에 주민 협의나 동의 없이 평택항에 해군2함대가 들어서며 포승읍 주민들이 괴태곶 봉수대에 접근할 수 없게 됐다. 환경도 환경이지만 지역 주민들이 함께하는 해맞이 행사를 하려니 그만한 곳이 없었다. 괴태곶이 해발 200m 간신히 넘긴 곳이라 해도 포승에서 가장 높아 해맞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수차례 해군에 협조를 요청하고 3년정도 해군기지 앞에서 행사를 했더니 그제서야 부대를 개방해줬다.
해군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보통의 주민이 상대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서평택환경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는데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큰 힘이 됐다. 집회 가자고 하면 동네 어르신들이 농사 짓다 말고 나와주셨다.
처음 단체를 만들게 된 이유였던 폐기물처리시설과 공장, 산업시설 등 15곳에서 감시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회원들이 생업을 마치고 저녁시간에 참여해줘 계속할 수 있었다.
이런 주민들의 단합된 힘 덕분에 2007년 주변 폐기물처리업체와 공기업 등에서 지원한 지역 발전기금으로 서평택주민복지센터를 준공할 수 있었다. 지하에 목욕탕과 헬스센터, 2층에 강당이 있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서평택환경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1층에는 서평택방정환지역아동센터가 들어서 아동들을 보살피고 있다.
서평택지역에 가스기지·화력발전 등 위험시설이 밀집돼 있다
1980년에 준공된 평택화력발전소는 건설될 때부터 예산·기술력 부족으로 오염 방지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동해왔다. 그 때문에 분진으로 인한 시민 건강과 지역농산물 등에 피해가 많았다.
액화천연가스인 LNG생산기지도 문제다. 석유저장탱크와 LPG저장탱크, 화력발전소가 모여 있음에도 그 위험성을 너무 쉽게 지나쳐버린다.
2012년 평택기지에서 발생한 가스 누출 사고 이후 주변지역 지원법 제정운동을 펼쳤다.
전국에 LNG기지가 평택·인천·삼척·통영·제주 5곳에 있는데 평택기지가 저장탱크 용량이나 부지를 보면 제일 크다. 당시 주변지역 주민들의 불안과 피해가 늘고 있음에도 어떤 지원이나 혜택이 없다 보니 LNG기지가 있는 지역 5곳의 주민대표와 환경대표가 모여 ‘LNG기지 주변지역 지원법 제정을 위한 전국연대회의’를 구성해 지원법 제정운동을 펼친 결과 LNG주변기지 지원금 등의 지원을 얻어냈다.
평택항에 수소복합지구 조성이 추진되면서 포승읍 냉열부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포승읍 냉열부지 9만7962㎡는 LNG기지 주변지역 지원법 제정을 하면서 포승읍의 단합된 힘으로 얻어낸 거다. 한국가스공사가 주민 개개인에게 줄 수 없으니 공공기관인 평택시에 기부채납한 거라 할 수 있다. 평택시가 주민 동의나 협의 없이 시장이 바뀌 때마다 아이스링크, 냉동물류센터, 연료전지발전소 등 이거 하겠다 저거 하겠다고 하니 답답했다.
이번에 수소복합지구를 조성하면서 평택시가 스마트팜을 건설해 그 중 일부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하더라. 먼저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갑자기 국비 지원을 받아 추진하겠다니 곱게 보이지 않는다.
최근 청북읍 어연한산산업단지 폐기물처리시설 반대운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법과 제도가 잘못돼 폐기물이 돈이 되는 세상이 됐다. 일반폐기물이든 지정폐기물이든 폐기물은 공공에서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주민의 피해를 줄일 수 있고 환경을 보존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공공을 중심으로 페기물을 처리할 수 있게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환경운동을 해온지 20년을 넘겼다
어린시절 원정리는 깨끗하고 살기 좋은 동네였다.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화력발전소·가스기지 등 혐오시설이 들어서면서 환경은 날로 나빠져 살기만 어려워졌다. 조상 대대로 살아왔고 후손이 살아갈 곳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평택시가 환경오염 방지와 미세먼지 개선을 위해 수소산업을 육성한다고 하지만 원정리에 집중된 위험·혐오시설의 안전성과 사고 발생에 대비한 연구용역과 안전진단을 우선하는 게 맞다고 본다. 개발이나 경제발전도 중요하지만 주민의 삶이 먼저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