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죽음
죽음을 끌어안은 대왕고래 한 마리 해안가로 밀려왔다
멸종위기에 힘입어 죽음은 세계각지로 보도되고
카메라 플래시는 죽음의 단서를 찾아 찰각거린다
저 육중한 몸집이 끌고 다녔을 파도와 오랜 전설들,
고래의 몸에 새겨진 파도가 바람에 출렁이며
심해의 날들을 부수고 있다
등에 패인 상처는 세상의 관심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햇살을 깊이 빨아들이고,
낯선 죽음은 누군가의 삶을 깨워놓는다
멈췄던 내 불안의 초침이 째깍이기 시작했고
불안의 서식처는 살아있는 자들의 영토이므로
나는 살아있다
고래의 죽음이 내 안에서 째깍이는 동안
나는 불안하게 살아있을 것이다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죽음도 삶의 연속이다
대왕고래가 끄고 싶었던 파도는 무엇이었을까
선박에서 발견된 파도의 각혈이
노을을 물들이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고래의 낯선 죽음이 완성되고 있다
* * *
포도나무
삼십년 째 햇살과 동거 중인
마당 한 켠의 포도나무
여전히 천 송이의 계절을 주렁주렁 매달고
달콤함을 익히고 있다
필사적으로 허공을 끌어당기던 넝쿨의 무모한 도전은
6월 앞에서 끝이 났다
천 송이의 푸른 욕망이 검게 완성될 열매를 꿈꾸며
햇살을 두리번거린다
노부모의 노동으로 저녁햇살을 늘이던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곳
포도나무 그늘은 그 많던 농부의 발자국을 채우고도
삼십년 째 연재 중이다
한 그루의 넓고 깊은 그늘과
곡선의 출생으로 직립을 꿈꾸는 단단한 가지와
천 송이의 푸른 젊음과
그 모든 걸 짓고 있는 노부의 휘어진 걸음
시간의 엄중함은 그런 것이리라
평택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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