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섶길’은 평택의 작은 길들이다. 16개 코스 오백리에 이르는 길은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 곁에, 호젓한 숲에,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유서 깊은 시내 골목과 재래시장에 이야기와 함께 짜여 있다. 섶길 여정에는 문화유산과 기념물, 역사 인물에 대한 테마들이 있다.
공직 은퇴 후 취미생활을 찾던 중 섶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필자는 평택에서 나고 자랐지만 섶길을 처음 걷는 날 곳곳에 숨어있는 경관이 놀라웠다.
그림 그리기에 약간의 소질이 있는 필자는 평택섶길 풍경을 펜화로 그려 간단한 글과 함께 평택시민신문에 한달에 한번 연재한다. 이번 연재를 통해 많은 분들이 섶길을 함께 걸으며 우리 고장을 더 알게 됨은 물론 건강과 즐거움을 얻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원효길의 수도사와 괴태곶 봉수대
괴태곶은 아산만과 남양만(지금은 담수호이지만) 사이에 반도 모양으로 바다에 내민 땅이다. 곶의 끄트머리엔 나지막이 솟은 봉우리가 있다. 옛날 이곳은 전라남도 여수에서부터 충청·경기 서해안과 강화도를 돌아 양천구 개화산까지 이어지는 제5봉수로의 주요 봉수대(烽燧臺) 중 하나였다. 모든 봉화는 목멱(서울 남산)에서 마무리된다. 괴태곶 봉수대는 평택향토문화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지만, 지금은 해군 2함대의 영내에 편입되어 있다.
원효길의 종착점인 수도사는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오도성지(悟道聖地)다. 절은 봉수대의 아래쪽에 있고 경기도 전통사찰 2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필자는 신봉하는 종교가 특별히 없으나 일반적으로 여러 종교의 기원과 교리에 대한 호기심은 있는 편이다.
수도사 경내에 들어서자 마침 뱃고동 소리가 선명히 들린다. 절 뒤 해군 2함대의 함정에서 울리는 소리다. 수도사엔 해수관음상이 있다. 해수관음은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등 바다와 인접한 도량에 주로 세워졌다. 관음은 관세음(觀世音)의 약칭인데, 세상 사람들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란다. 관세음보살은 세상 사람들의 하소연에 귀 기울여 주는 신통한 부처인 것이다.
대웅전 뒤편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대순은 4, 5월경에 장대처럼 순식간에 솟아오른다. 그리고, 장맛비를 맞으며 가지와 잎이 피어나고 차차 마디와 몸통이 여물어 간다. 대나무 숲 호젓한 공간에서는 가끔 사찰음식 시연 행사가 열린다. 주지이신 적문 스님은 비구승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전통사찰음식 명장으로 지정된 분이다. 스님은 중앙승가대학의 학승 시절 학보사 편집장으로 전국 사찰음식 실태 취재를 하며 사찰음식과 30여 년 인연을 갖게 되었다. 사찰음식은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참살이 음식으로 조리하는 것도 일종의 수행이란다. 자기 몸을 사랑하듯 남도 사랑하라는 생명의 가르침인 것이다. 필자는 십여 년 전 이곳에 큰 행사가 있어 사찰음식의 정찬을 맛본 적이 있는데, 고급 한정식처럼 정갈하면서도 맛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절의 마당에 서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는 초록의 수세가 매우 성하다. 대개의 나무가 그렇지만 특히 느티나무 고목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모습이 제각기 개성이 있고 풍기는 운치도 훌륭하다.
배움이 높은 적문 스님은 템플스테이, 타 종교인들을 초청하는 산사음악회 등을 열어 지역과 소통하며 원효의 화쟁정신을 실천한다.
눈 내린 겨울쯤 이곳에서 누비옷 입고 절 음식 맛보며 한 이틀 쉬어 볼까나.
